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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망대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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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1-03-15 22:24 조회 1,439회 댓글 0건

본문

가까운 나라 일본이 국가적 재난에 빠져 큰 곤란에 봉착했습니다.

시간마다 전해오는 그곳 소식에 무슨 생각을 가졌습니까?

설교자는 무너진 실로암 망대가 생각되어

부랴부랴 본문을 바꾸어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1)사람의 관심

사람의 관심은 저마다 다릅니다.

같은 국가, 같은 민족일지라도 시대따라 다릅니다.

일본 식민지에서의 관심은 해방이고 독립이었습니다.

전쟁 중에는 승리였습니다.

오늘 날에는 무엇인가요?

 

이 관심사가 무엇이냐 따라 흥망이 결정됩니다.

예수님 시대의 관심사는, 로마에게서 해방이나, 더 나은 삶의 질보다

‘죄’가 주된 관심사 였습니다.

 

당시의 빌라도 총독이 갈릴리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일을 보며

그 사람들의 죄가 더 있어서 그렇게 되었는가?하며 주님께

물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특별한 종교인 아닌 일반인들의 관심사였던 것이

이채롭고 솔직히 부럽습니다.

 

요즘 같으면 일본의 재난을 보고, 이웃들이 와서

“목사님,일본의 재난이 죄가 많아서 그런가요?” 하는 경우일 겁니다.

 

이러한 질문에 주님은“아니다”하셨습니다.

즉 죄로 말미암는 결과초래는 맞지만 ‘더’는 ‘아니다’하셨습니다.

이 답은 ‘회개촉구’로 이어집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의 재난을 보며 신앙적으론 우리가 다시 한 번 재위에

앉아 회개함을 느껴야하고 인간적으론 그들의 재난회복을 위한 각종 활동에

동참하며 지지하고 기도해야합니다.

 

2)하나님의 통치

우리는 세계의 통치가 하나님으로부터 임함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일본이나 옛 실로암망대가 무너진 데에는

우연은 없고 섭리만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 더욱 더 망대가 무너지는 사건과 사고는 증가할 겁니다.

말세지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한 때 성도는 어때야 되는가요?

죽고 망하는 상황속에서 어때야 됩니까?

나 살았으니 감사하고 저들 망함은 죄값이라고 해야 됩니까?

그러나 공의로운 심판을 죄에게 보응하신 하나님일지라도

정죄나 비난보다 ‘인애’를 원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저들을 신앙적 비판이나 정죄를 할 수 없습니다.

결코 그들보다 죄에 관한 한 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런 경우, 과거에 매인 민족적 감정에서도 벗어나

참사랑으로 저들의 슬픔에 동참하고 지원하는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번제보다 인애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향하신 ‘죄,회개’의 멧세지를 들어야 됩니다.

 

이 모양이 진정성 있는 경건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모습이야말로 하나님과

죄를 의식한 모습이요.말씀을 온전하게 받은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이런 시대야말로 부흥을 이루는 반면

남의 죄에 대해서 정죄하며 긍휼이 없다면 하나님과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만큼,

죄는 번성하고 사랑은 마르게 됩니다.

결국 ‘쇠퇴’가 오고 ‘흑암기’가 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통치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시128: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

 

잠14:2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시129:5~6)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저희는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잠11:20)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이 법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경외는 ‘의’요,생명이며

하나님 불신은‘악’이요,사망이라는 겁니다.

 

인류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이 법칙에 의해서 통치됩니다.

믿던지 아니 믿던지 간에,

 

그러나 이 법칙 외에 다른 법칙이 있는데

하나님은 ‘악인에 대해서 오래 참으신다. 법칙입니다.

“여호와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악을 기뻐해서가 아니라,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이 그 사람이 회개하길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것은,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즉시 사유하십니다.’

시130:3~4)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 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우리의 죄가 많아 먹보다 검고,깊어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용서받았던 것은

사유하심의 하나님인 까닭입니다.

 

마지막으로,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납하십니다’

죄에서 죽고 의에서 산,전인격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죄 사유뿐만 아니라 ‘의롭다’까지 하십니다.

 

이 법칙의 통치속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는 심판받아 죽어 땅에 장사되고,

부활하신 의로운 생명의 모습에서 새사람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구원 받은 사람은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영의 사람인 만큼,관심사가 다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좋아하다가 어른이 된 후 등산을 좋아하는 일과

같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죄의 탄식과 사람존중,영혼존중이 커서

복음과 주의 사랑의 자원자가 되고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시대는 ‘악’이 소멸되는 만큼,‘의’가 증가 됩니다.

자연,속이는 저울,부패함,등이 적어 사회는 밝고 명랑하며

환경조차도 단정한 삶으로 성립되어 꽃들도 향기가 있고

개들조차도 건강해 집니다.

 

물론 이 땅위에서 이토록 완전한 하나님나라 구현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구현을 이루고자 하는 애씀의 흔적을 통해

적어도 ‘천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한 미래의 장소입니다만

각기의 그림자는 내 주변에서, 내 시대에서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앞에서의 어떤사람이냐?로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육선이 가득하여도 다투는 가정은, 지옥이 아니겠습니까?

마른 떡 하나 놓고도 화목하다면, 천국 아니겠습니까?

지금의 일본을 천국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저들이 우리 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렇다 말하지 맙시다.

다만 그 모습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발견하고 ‘회개열매’를 확인 합시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집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상가 집에 문상을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개하고 예수믿는 집사로써 종전처럼, 절아닌 그 무엇을 궁금해 했던 겁니다.“

이 모습, 회개한 모습인 줄 믿습니다.

 

회개의 열매가 삶으로 증명됩니까?

주변에서 변화되었다고 인정합니까?

 

결론) 우리는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 재앙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만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하신

그 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지금은 인생이 그 분을 판단하지만, 훗날에는 그분이 인생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에게 요새요,방패이기에

물이 침범치 못하고 불꽃이 사르지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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