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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시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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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1-02-27 21:43 조회 1,487회 댓글 0건

본문

제 목:하나님 시각에서

본 문:눅2:24~35

일 자:2011년2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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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돌 된 아이에게 돌잔치를 하며

이때 ‘돌잡이’를 하게 합니다.

 

상에 진설된 여러 물품 중에 무엇을 잡겠는가? 하여

아이의 미래를 시험해보는 비 신앙적 일입니다.

이 때 실을 잡으면 장수하겠다하고

돈을 잡으면 부자가 될 것이라 하고

공책을 잡으면 공부 잘 할 것이라고 덕담하며 축복합니다.

 

이 돌잡이는 축복의 시간인 만큼

잡아서 나쁠 것 같은 칼등은 아예 갖다 놓지도 않습니다.

만약 십자가를 갖다 놓았더니 그 십자가를 잡았다고 합시다.

과연 뭐라 할까요? 고난의 상징인만큼 고생하겠다 할까요?

아님 목사님이 될 것이라 할까요?

설령 이럴 경우 부모의 반응은 어떨까요?

 

1)예수님과 부모

예수님께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탄생 후 8일이 되어 성전에서 결례를 행할 때에

기도하던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아기예수를 안고서는 하나님께 찬양을 올렸지만

곁에 있던 부모에겐“이 아이는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겠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축복인가요? 저주인가요?

덕담일까요? 악담일까요?

 

여러분의 경우는 어떨까요?

문제는 수십 년 후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성년 예수님의 생애는 환영받지 못한 삶이었고

가난한 삶이였으며

그것도 부족해 부모보다 먼저 십자가위에서 단명했습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소위, 기도 꽤나 했다는 시므온의 악담이었습니까?

아님 예수님의 공격적이지 못한 삶인가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태어납니다.

즉 목적있는 존재로 태어납니다.

옛사람들은 삼신할매가 운명을 점지해 준다고 믿었지만

어리석음의 소치일 뿐, 실제는 하나님입니다.

 

노아의 존재목적은 ‘방주만들기’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아비’가 되고자입니다.

같은 사도일지라도

바울은 이방전도자, 베드로는 이스라엘을 위함입니다.

베드로의 경우 부르심과 생애는 물론 죽음조차 예고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요21:18) 내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사람은 의지보다 섭리가 앞서는 존재이기에

“의인은 의로운 일에, 악인은 악한 일에 쓰임 받습니다.”

 

그럼에도 이 섭리를 무시한 채

나를 위한 목적으로만 살도록 부추킨 것이 ‘죄’고

그 모양이 ‘타락’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목적에 맞는 모습을 찾은 일이요

신앙은 그 목표를 따라 경건히 사는 생활입니다.

 

타락과 구원의 중요한 관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절대주권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 신앙과 불신앙의 시금석입니다.

인정하는 신앙일 경우, 범사에 인정하느냐? 아니냐?로 성숙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보면 역할과 지위가 분명합니다.

이 질서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질서 속에서 자신을 보지 못한 체

거울 앞에선 자신, 남이 부추킨 자신을 보고 진짜인 냥 착각하여

허세와 과욕을 부리고 결국은 자기 지위를 떠난 이탈과 타락을 걷습니다.

불행입니다. 세상이 불행한 이유의 첫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한편의 연극이나 영화에는 주인공 외에 조연과 행인1.2.3.등이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면 어찌되겠습니까?

더 큰 문제는 머리나 주인공이 아니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자학까지 하고 있으니, 과연 그럴까요?

 

로마서의 여러 구절울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케 하시느니라“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입니다.

언제나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 줄만 알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워 작아도 요긴한 존재가 됩니다.

 

독일 신학자 본 휘퍼는 빼어난 신학자였습니다.

일찍기 신학교수로써 미국에서 안정되게 살았습니다.

독일에 히틀러가 등장하자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돌아와서 히틀러와 맞서다 처형당했습니다.

누가 이를 ‘개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까?

 

영국 황실의 주치였던 로이드 박사는 황실을 박차고

탄광촌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헛수고’입니까?

 

안정이나 부함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목표를 이룩했던 겁니다.

후대는 이를 가리켜‘숭고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합니다.

 

과연 나는 누구입니까?

왜 지금 여기에 존재합니까?

왜 지금의 나로 결정되었습니까?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 자주 여쭈어야 합니다.

 

진정한 나를 알기 원한다면

* 내 마음에 울리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울리는 소리에 화답할 수 있는 기능을 확인해야 합니다.

 

즉, 사도바울은 당대의 로마시민권자입니다.

헬라어에 유능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이것 때문에 그는 이방으로 보냄을 받았던 겁니다.

하나님은 주시지 않은 체 “하라” 혹은 “가라”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없는 것을 생각하여 “주옵소서”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있는 것들을 점검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를 주셨습니다.

 

얼마나 세월을 낭비했는지요?

얼마나 기시채로 뒷걸음치는 삶을 살았는지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그 예수님조차 하나님의 매뉴얼 따라

오셨고 사셨고 돌아가셨습니다.

말구유의 탄생, 애굽의 피난, 나사렛의 성장, 환영받지 못한 삶,

마침내 어머니 앞에서의 죽음 등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거든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우리 신앙은,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설득하는 능력과 기술을

구하는 신앙은 아닙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쓴잔도 마시었습니다.

내 뜻을 고집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멋있고

출중해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면, 쓰리고 아픈 삶일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할 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음같이”

이 삶에 아름다움이 있고, 정녕 성공이 됩니다.

 

칼로 마음을 찌르는 듯 한 아픔을 예고 받았음에도 거부하지 않음이

하나님의 시각에선 아름다움이고 성공입니다.

초가 타지 않으면 빛과 열이 없습니다.

종이 맞지 않으면 소리와 울림이 없습니다.

그 초가, 그 종이, 누구입니까?

 

이런 사람, 이 삶을 위하여 주신 보장이 있습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

 

결론) 행복추구가 결코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기독신앙의 중심도 아닙니다. 속지마십시오

행복은 지름길이 없습니다. 값 싼 것도 없습니다.

우리 신앙은“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를 바라보자”하심과 같이

낮은데는 물론 죽는데 까지 따라 가는 일입니다.

삶의 역경을 두려워 마십시오 뜻이 보이면 가십시오

 

우리의 남은 날을 계수하면 짧은만큼

멋지게,행복하게 원대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합니다.

이 생명을 어디다 바치겠습니까? 내 생명보다 더 귀한데 바쳐야 합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시각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칼로 찌르는 듯 한 아픔을 주신 예수님은

마지막 말씀이 “다 이루었다”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나의 가는 길을 마치려함에는”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섭리를 알고 그 목표를 이룬 사람만의 마지막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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