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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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예용범 목사
본 문: 출32:1~7
일 짜: 2010.8.1
혹시 애국가를 신나는 록으로 연주하는
것을 들으셨나요?
아님 죽은자를 기리는 제사에
축문과 제사상이 빠졌다면 어떨까요?
세상은 변화되었지만
애국가는 바뀌지 않고
제사 역시 변함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애국가는 국가의 찬양인 만큼
개인의 성향과는 무관하고
제사는, 제사상과 축문이 곧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의 경배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가를
보여 줍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의 '절대적 의무'이고
세상사람들과의 '차별'이고 '특권'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은 예배했기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배하기 위해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을 범했습니다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형상화했고
그 주변에서 '뛰어 노는 것'이 경배인냥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어댔을까요?
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모양은 달라도 중심사상이 하나님 경배인
만큼 그 경배를 열납하시고
그 경배자를 기뻐하셨을가요?
오히려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그것은 곧 '망함'을 웅변합니다
또 다른예로 아론 대제사장의 두 아들도
제사장입니다
이 두 아들 제사장은 제단 불을 지피는데
정해진 불이 아닌 '아무 불'로써 제단 불을
지폈다가 역시 망했습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예배는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신령한 제도와 요소대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관한 하나님의 식양이 있는데
레위기 입니다
예수님이 유월절에 하나님의 어린양
되어 십자가 위에서 돌아 가셨고
3일동안 장사되신후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부활하신 것은
예수님의 기분이나 상황따라 되어진
일이 아닌 이 레위기에 맞추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의롭다고 여기심은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대로 이 모든
구원사역을 준행했기 때문입니다
2)현대의 예배
그렇다면 현대의 예배는 어때야 될까요?
여전히 계시에 의해야 됩니다
이제 레위기가 아닌 예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드려져야 되는데
결코 레위기와 무관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정신면에서는 더욱 굳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착각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하여
예배를 새롭게 하거나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하여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종을 치닫는데
우려를 가져야 합니다
새로운 것은, 우리의 신분이요
자유함이 있다는 것은, 죄책이 가셨다는
의미일 뿐
우리 마음대로 하나님을 예배 할 순
없습니다
아니, 예배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께 관계된 것은 그 어떻것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성막을 짓는 것도, 그 성구도
제사장 예복도 다 주신 식양따라였습니다
만약 여기서 벗어나면 '배도'요
'반역'인 것입니다
가시 떨기 나무의 불꽃중에 임재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신을 벗어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계신곳은 거룩한 만큼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그 어떤 것도
용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배는
1.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입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의'에 덧입혀서
예배해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 예배는
2.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자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예배의 대상은 구원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때 감사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이 감사감격은 마음에서 시작하여
눈빛 얼굴표정까지 이어지고
마침내 행동,모습으로 결정짓습니다
주님은 제단에 제물을 드리다가
형제와 다툰 일이 있거든 먼저 화해하고
와서 제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3.영화롭게 함이 있습니다
모든 예배는 하나님이 으뜸되도록해야 합니다
설교자, 기도자, 그 누구도 아닙니다
결혼예배 출판예배등은 잘못입니다
또한 예배 중에 개인의 공덕이나
칭송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연 불려지는 노래는 어때야 됩니까?
찬양, 찬미여야됩니다
워쉽송등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찬양가에는 하나님의 속성과
은혜와 구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4.기념하는 일입니다
예배 중에는 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강론되어야 되고 성례로 기념되어야 합니다
성찬식,세례등입니다
3)현대의 잘못된 예배
현대인들의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예배를 믿음이 아닌 '느낌'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쯤되니 예배당은 '비젼홀'이 되고
예배는 '공연'이 되어, 기획 연출이 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이 중심되는 경향입니다
청중을 의식해서 신나는 음악이 연주되고
연주자는 기도보다 분장에 신경쓰고
자연 리허설이 되고
자연 선동이 나옵니다
이 중심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
청중이 어떻게 느낄 것인가?에 치중합니다
종종'역동적인 예배'란 말을 씁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는 예배라는 의미인데
실제는 신나는 음악을 부름으로써
대신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감정에 몰입한 것이
성령충만, 성령의 임하심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의 모욕입니다
성령강림에는 언제나 '회개'가 옵니다
주님의 영화로우심이 인식되기에
'나는 죽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역동적인 예배에는
오직 열광함과 탈진과 피곤함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훗날 이 모양이 기독교라고 할까 봐
걱정됩니다
여기에 추가되는 것은
기도 할 때의 '배경음악'입니다
주변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처방이지만 이 순수성을 잃고 있습니다
마치 음악 없으면, 공부도 못하고, 차도
못 마시고 하는 여린 도시인처럼
기도 분위기를 잡기 위해 음악을 틀어야 됩니다
어느 사장은 술을 먹고 기도하면
감정이입이 잘 된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진지한 대화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에 그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예배도 기도도 예수안에서만
효력이 있어 효능을 갖습니다
결론) 앞서 하나님은 "내게 토단을 쌓고"
내 이름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한 토단, 사람들은 자꾸만 신령적 의미를
더 할량으로 정으로 다듬고 쪼아서 쌓고자합니다
또 세월이 지나면 그 위에 무엇을 또
추가하고 또 추가하고자 합니다
결국은 '부정하게 함이니라'(출20:25)
신앙은 단순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해야합니다
신령은 성령의 감화감동따라서
진정은 삶의 진실과 결단과 책임을
갖고서 드리는 인격과 삶입니다
종교적이고 의전적인 예배만 생각하니
결국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경배,
'일어나서 뛰놀더라'하는 부패함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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