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 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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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오케스트라나 우리의 궁중악단을 보면 서로 비슷해도
다른 음색을 내는 악기들이 있습니다.
만돌린과 바이올린,징과 꽹과리가 그렇습니다.
왜 다른가요?
다른 용도이기에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1)사람들
사람들은 다양합니다.모양,성격,지식,은사,생활정도 등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부자의 기도와 가난한 자의 기도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다양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영광을 드러내고자하심입니다.
*특별히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의 종이라 일컬음을 받는 이들이 가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하나님의 능력부족은 아닙니다.
가난은 하나님을 구하는 ‘은혜의 단초’가 됩니다.
본문의 선지생도의 부인도 가난 때문에 엘리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구합니다.
성경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리대상 이었습니다.
이삭도 다 줍지 못하게 하셨고 저당 잡은 옷도 곧 돌려주라 하셨습니다.
왜 사르밧 과부로 말미암아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하셨습니까?
엘리야보담 그 과부와 아들을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부자에겐 기적이 필요치 않습니다만
가난한 자에겐 날마다 기적이 필요합니다.
가난한 자는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구약에 기적이 많았던 것은 기적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자가 많음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가난한 자에 대해서 군박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군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가난한 자는 도와야 합니다.민족과 신앙을 앞서 도와야 합니다.
강도만난 자를 도왔던 사마리아인이 좋은 실례입니다.
우리의 이웃은 부자나 권세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강도만난 자인 것입니다.
주의 종들의 가난은 무엇 때문입니까?
주의 종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큰 확신을 갖고
그 백성들을 깨우치라함입니다.
부모는 자식들 보다 지혜가 앞섰습니다.
자식들을 교훈하며 본을 보입니다.
주의 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에 마음을 두는 백성들에게 큰 확신으로 교훈하며 지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큰 확신은 논리만이 아닙니다.큰 소리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험,믿음만이 신뢰와 감동을 줍니다.
엘리사의 확신을 보십시오
왕하4:43)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과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기름을 팔아 빚을 갚으라” 어디서 온 확신입니까?
교과서입니까? 모방입니까?
앞선 많은 지옥같은 가난에서의 하나님의 보호와 책임을 누렸던 결과입니다.
확신은 담대함을 갖고 옵니다.
절대적 믿음의 산물이 아니겠습니까?
반면 믿음의 큰 확신이 없다면 어떨까요?
놀라고,두렵고,낙심되고,원망 불평하고 비굴해지며 비참해 집니다.
가장에게 믿음의 확신이 없다면 온 가족이 죽을 지경이 됩니다.
담임목사에게 믿음의 확신이 없다면 교인들은 답답해 할 겁니다.
2)선한 역사
하나님은 왜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서 선한 역사를 이루실까요?
왜 부자보다 더 선용하실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힘의 나라가 아니요 물질의 나라도 아니요
믿음의 나라요 기도와 사랑으로 이루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금번 중국행은 심양을 거쳐 연길에 갔습니다.
심양에서 만난 이들은 불신자입니다.
공산당서기.부동산업가,무역업가,북경에서 부러 온 사람은 증권회사사장입니다.
타고 다니는 차가 달랐고,음식점도 달랐고 씀씀이도 좋았습니다.
그들이 나를 대접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이웃에 대한 긍휼도 영혼에 대한 사랑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안정과 사업얘기만 있었습니다.
반면 연길의 사람들은 가난한 목사.전도사였습니다.
목사의 아이들은 폐결핵으로 입원해 돈이 더욱 필요한 지경이고
나를 보러 온 전도사는,9개월된 아기의 분유 값을 염려했습니다.
그래도 이들에게는 남다른 구제가 있었고 영혼에 대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선한 역사는 바로 이러한 이들로 말미암아
이루워 가고 있는 겁니다.
만약 이들이 부자였다면 자기 애들이 폐결핵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고
분유 걱정 없었을 터이지만 북한의 어느 인민은 얼어 죽거나 굶어 죽어야 했을 겁니다.
부자에겐 꼬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그러나 참 친구는 없습니다.
물질이 많은 곳에는 풍성함은 있어도 다툼도 많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위로가 많습니다.
가난한 곳에는 무엇이 있나요? 하나님의 역사가 큽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한 말씀을 귀담아야 합니다.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부자가 망하는 이유는 탐심입니다,
자기사랑, 돈 사랑 뿐입니다.
다시 귀담을 말씀입니다.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 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
미래가 보장되길 원합니까?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저 생에서 낫기를 희망합니까? 묫자리나 수의가 아닙니다.
지금 선한 사업에 동참해야 합니다.
당장의 부족함이나 아까움이 있어도 나중은 좋습니다.
동물도 지혜가 있으면 나중을 대비합니다.
어찌 펀드나 연금만이 안전하다고 생각 합니까?
보십시오,저축은행이 또 문제가 되어 손해보는 이들이 아우성입니다.
3) 변질
신앙에도 변질이 있습니다.
고약한 병입니다.
*가난했다가 부자되더니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나 몰라라” 하는 경우입니다.
*아님,계속된 ‘가난’에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입니다.
다 초심을 잃은 모습입니다.
시련에 굴복한 겁니다.“쥐구멍에도 볕든다”고 합니다.
실제 볕드는 일이 있기에 이 말이 생긴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실행되어야 합니다.
*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 마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 하노라
결론) 성경은 “부자 되기를 힘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가난하게 되기를 힘쓰라하심도 아닙니다.
“주의 일에 힘쓰라”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부자되기 보담 선한역사 이루는데 바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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