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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1-01-18 18:28 조회 1,36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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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열도의 나라 일본에서는

현재 나이 100세인 ‘시바타 도요’라는 할머니의 시로 열광하고 있습니다.

한 지방신문에 연재한 그녀의 시가 시집으로 출간됐는데

무려100만부가 팔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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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평등한거야

나 괴로운 일 있었어도 살아 있어 좋았어

당신도 약해지지 마 -약해지지 마-

 

나 말야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주면

마음속에 저금해 놓고 있어

외로워질 때 그걸 꺼내 힘을 내는 거야

당신도 지금부터 저금해 봐

연금보다 나을 테니까 -저금-

 

개인적으론 이 시를 읽는 순간

그녀의 시집을 사보고 싶었습니다.

아, 나도 시를 배워서 쓰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100세를 산 연륜에서 담백한 언어로 삶을 이해시켰기 때문입니다.

사실 뜻도 이해할 수 없는 시가 얼마나 많습니까?

단어의 조합만 이룬 시도 많지요?

 

이 두 편의 시는,인생은 고달프다. 사람은 허약한 존재이다.를 웅변했습니다.

 

1)고달픈 인생

왜?인생이 고달픕니까?

왜?인생은 홀로 서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허약한 존재입니까?

신이 아닌,육체 즉 태생부터 한계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죄는, 사람에게 착각을 주어 하나님인 냥 허세속에서 살게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헛된 믿음을 준 것입니다.

 

옛 마귀가 인류의 시조된 아담 하와에게 선악과를 갖고 어떻게 유혹했습니까?

창35: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이 유혹 배경에는 아담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하나님과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의도는 불순을 넘어 교만의 극치이고 반역입니다.

 

이 타락의 이유? 지금은 없나요? 여전합니다.

이성과 과학은 각 분야의 향상된 기술을 잉태했습니다.

그 기술의 지혜는 어디서 온 건가요?

욥38;36) 가슴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혜로 하나님을 찾지 않고

감사치 않고 영화롭게도 하지 않은 체

오직, 사람 스스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술의 향상,문명의 발달은 현대적 바벨탑 쌓기가 되었습니다.

고대의 사람들도 그렇게 했지요

창11:3~4)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과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그 때의 건축술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흔히 옛날이면 무지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실제는 지금도 불가사의한 일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바벨탑의 목적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 아닌 사람을 위한 일입니다.

특별히 ‘흩어짐’을 면하자 했던 것은 ‘하나가 되자’인데

곧 ‘하나님이 되자’ 아니겠습니까?

 

앞선 하나님의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편만하라”는 말씀의

노골적인 거역 아니겠습니까?

 

오늘 날까지의 기술로도 세계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기술이 진화하여 ‘지구촌’이 아닌‘지구방’이 될 것입니다.

이쯤되면 하나님은 안중에 없습니다.두려워함도 없습니다.

벌써 그런 징후가 왔습니다.

국민소득 2만불이 되니 놀러 갈 생각만 하고 죽지 않을 생각만 할 뿐입니다.

선진국인 유럽이 먼저 이 증세가 왔습니다.

그리고 북미가,그리고 우리가 답습하고 있습니다.

 

2)무너진 바벨탑

바벨탑이 왜 무너졌습니까? 부실공사였나요?

하나님이 고의성을 갖고 강제로 흩으셨기 때문입니다.

고의성이란,목적이 있기 때문인데

본래의 “흩어지라”는 섭리를 이루시기 위함이요

강제적인 것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경고요

그 시도에 대한 징계입니다.

 

우리는 또 다른 바벨탑이 무너지고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심각한 구제역이 창궐 했습니다.

그 능력 많고 기술 좋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입니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어쩔까요? 10만이 죽었습니다.

*기상이변,화산 지진등의 변고가 많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처럼 완전하다면 해결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 지구를 유토피아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치 못합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습니다.

흙으로 지은 존재요 우리의 생명은 코의 호흡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실체와 정체성을 망각한 체

뭐 좀 한다고 해서

뭐 좀 안다고 해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하며

하나님인 냥 착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방자이며 큰 죄입니다.

사41:29)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를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 뿐이라

 

사1:3)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 갔도다

 

3)하나님의 질문

 

하나님은 동방에서 가장 큰 의인이요

완전한 자인 욥에게 묻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욥에게 하신 질문은, 자칭 똑똑하여 하나님인 냥 착각행세하는

모든 인류에게 하신 겁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까?

또 할 수 있느냐?하심에 과연 할 수 있습니까?

답과 행할 수 있다면 신입니다.

그러나 그렇치 못하기에 ‘사람’인 겁니다.

하나님의 질문의 의도를 아시겠습니까?

“주제를 알라”“착각말라‘는 책망입니다.

 

이에 욥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진술을 눈 여겨 보십시오

그리고 배웁시다.

욥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의 뜻은 ‘회개하는 자’입니다.

욥기서의 주제는 예수님의고난,성도의고난을 의미합니다.

 

성도의 고난은 무엇입니까?궁극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상기시키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살 길이다.를 교훈합니다.

 

성도의 고난, 아니 사람의 고난은 사나워도 참 유익되는 구원의 방편입니다.

고난 받은 성도는 ‘욥’이어야 합니다.

회개한 사람은 언제나 ‘욥’입니다.

 

하나님은 방자하고 교만하여 타락한 나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안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홀로서기는 않됩니다.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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