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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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보는 책이 죤 파이더의 ‘삶을 허비하지 말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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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가 일반적인 교훈인데 비해
‘삶을 허비 하지 말라’는 좀 특별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인가 열심히만 하면 됩니다만
‘삶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하는가? 보담, 왜? 하는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1)목적과 목표
본문은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인 가나혼인집의 결과를 기록한 짧은 구절입니다.
여기에도 우리 삶의 모양이 교훈되어 있습니다.
요1:11) 예수께서(인물이 나옵니다.)
이 처음(순위가 나옵니다.)
표적을 (방편이 나옵니다.)
갈릴리 가나에서(장소가 나옵니다.)
행하여(모양이 나옵니다.)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목적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목표가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과 목표입니다.
예수님은 목적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입니다.
사람은,하나님의 목적에 맞는 목표가 있을 때
삶이 허비되지 않고 영광이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이 믿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서 빗나간 체 자신들의 목표만 달성할려다
인생낭패를 겪습니다.
이 낭패를 방지하기 위해 예수님이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1: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증거는 하나님,천국,지옥,생명의가치,죄성,믿음의우월성,사랑 뿐만 아니라
사람이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야 하는지도 증거하셨으므로
빛 중에 탁월하여 참 빛이요 복음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어떤 존재입니까?
우연히 태어 난 존재입니까?
실수로 태어 난 존재입니까?
과학이 말하는 아베바로부터 진화한 존재입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온전하신 섭리와 목적에 따라
하나님을 닮아 이 시대에 태어난 ‘복 있는 자’들입니다.
“번성하라.충만하라,다스리라,”의 하나님의 대리인입니다.
1.천사도 흠모하는 존재입니다.
천사는 영적존재입니다.날마다 하나님을 뵙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흠모합니다.우리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천사의 지위는 우리를 살피는 역할입니다.
2.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노래를 부르기 위함이라
개인의 상태는 제 각기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은 같습니다.
장로교신조는,청교도신조입니다.
청교도신조는 종교개혁주의자의 신조입니다.
이들의 신조는 사도들과 같습니다.
그 신조 첫 장에, 사람의 최고된 목적은“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구체적으론,“먹던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게 영광을 돌려라”는
개인의 목표로 주어집니다.
왜? 기업을 합니까? 돈 벌려고? 그 다음은?
왜?공부를 합니까?진학?취업? 그 다음은?
목사인 경우? 왜 목회를 합니까? 왜?교회성장에 목숨을 겁니까?
아님,개척을 합니까?
왜?선교사로 오지에 갑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목표가 아무리 크고 아름다워도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 부합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루워도 허망하고 그 목표조차도 없을 때는 방황하여 낭비하는 삶이요
후회하는 일생이 됩니다.
타락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서 이탈된 삶이요
방황과 방탕은 그 삶의 모양이요
이 삶에서 돌이킴이 회개요
회복된 것이 구원이요
그 회복된 삶의 모양이 복음화요
이때 맺혀진 윤리가 빛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복음화 곧 예수화는
예수님처럼,분명한 목표의식이 세워지고
성숙할수록,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주변을 보시시오.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지렁이조차 땅을 기름지게 하는
목적이 주어졌습니다.
벌,나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꽃가루를 옮겨 수정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만이 타락하여 이러한 목적을 이탈하고 자연조차도
변질되게 만들었습니다.
결과가 궁금합니까?하나님께는 영광보다는 ‘슬픔과 진노’를 안겨 드렸고
자신들에게는 ‘불행과 고통과 죽음’을 떠안았습니다.
2) 복음의 능력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에 의한 목적과 사람다운 목표를 이룩하게 하셨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입니다.
근심있던 혼인 집에 웃음이 그쳐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요1: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것을 두었도다하니라
나진 삶,나아진 일생 아니겠습니까?
개인이,가정이,시대가 이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복음화를 이룬 사람은,
1.존재감이 확실해 집니다.
하나님앞에 죽었던 죄인인데 오직 은혜로 다시 살아난 만큼
자신을 확실히 압니다.
2.삶의목표가 확실해 집니다.
누구인지를 알았으니,왜 사는지를 알게 됩니다.
전에는 자신을 위해 ,떡을 위해 살았으나
이제는 영생의 떡을 주신 하나님,하나님 뜻,하나님 나라를 위하게 됩니다.
소위 변화를 이룬 겁니다.
그 삶이 힘들어도 기쁩니다.담대합니다.
어제, 중국 연변의 조선족 전도사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시간 맞춰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와 보내 온 메일입니다.
“목사님, 구주성탄을 맞이하면서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부족한 저를 늘 사랑하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지난 달에는 무산의 23세 청년이 하늘나라에 갔어요
10살 때, 짜른바지에 런닝구만 입고 두만강 변에서 뛰노는 모습의 어린이일적에
만나서 알게 되었는데 그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잘 아는데요
중국에 왔다가 잡혀서 단련대에서 몇 달간 있다 나와서 허약과 병으로
죽음을 맞아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국 다녀왔을 때 도움을 요청하기에 약과 돈을 부쳐 보냈는데
먼저 가서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 들었어요
지금 강추위와 주리고 목마른 수많은 강 건너 식구들이 어찌 이 겨울을 견디어 낼지?
주님의 사랑과 위로와 보호하심을 기대합니다.“
이전도사님은 무엇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무엇에 대한 아픔이 있었습니까?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 흔한 자동차,집,명예,안락함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중국교포가 북한사람에게 관심있는 것 아닙니다.
두만강 변에 산다고 해서 다 이러질 않습니다.
하나님의사람이 되니 하나님의 목적인 사람,생명의 구원이 일생 목표가 된 겁니다.
수년 전,북한의 기근 시,8000명을 맞아들였다면 믿겠습니까?
이일 후에 표창은 고사하고,감옥가고,교회를 빼앗겼다면? 어찌 생각하십니까?
철은 철로 연마합니다.
연약한 나무를 세우는데 다른 나무를 버팀목으로 활용합니다.
이렇듯, 죽은생명,못난생명 살리시는데 성도를 활용하십니다.
흔히 큰 것,좋은 것,많은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여 목표로 삼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장군이라도 자신을 위해 군생활 할 수 있습니다.
반면,졸병이라도 애국적 충정갖고 군생활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참 군인입니까?
3.내 삶의 부정적 요소도 아름답게 사용됩니다.
혼인 집에서 포도주가 모자란 일은 부정적 요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믿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시대적,개인적의 부정적 요소가 있습니다.
실패,사고,이별,가난,무식 등 감추고 싶은 요인들입니다.
그냥 놔두기만 해도 아픈 요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단점들도 아름답게 사용하십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큰 화상을 만난 이지선양은,화상환자의 상담자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탈북전도사는 통일을 위한 목회자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모세의 40년의 미디안 광야는 암울한 시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절을 사용하셨습니다.
광야의 길잡이로 훈련시켰습니다.
결론)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우리 개개인을 향한 목적을 이루워 내십니다.
다만,내가 하지 않으면 남이,아니면 돌멩이를 통해서라도 이루실 겁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할렐루야 해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맡기셨습니다,아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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