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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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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0-12-16 01:11 조회 1,485회 댓글 0건

본문

제 목 :신앙고백

본 문:시:136:i~9

일 자:2010년11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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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운전자로부터 사고를 당해, 온 몸의 화상을 입고

30번이상의 수술을 받은 이지선양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훌륭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당신을 사랑했다면

애초 이런 사고를 피하게 해줬어야 하지 않나? 는 질문에

그녀는“당연히 원망했다. 통증이 심할 땐 나를 살려주셨다는 하나님이고

뭐고 다 싫었다. 그 때 엄마가 하루 한 가지씩 감사할 거리를

찾자고 제안하셨다.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 간 날

*내 손가락으로 환자복 단추 구멍 하나를 채우게 된 날

*아래 입술과 윗입술이 겨우 닿아 오빠를 ‘오까’라고 부르게 된 날 등

‘감사찾기’를 했더니 진통제가 결코 줄 수 없는 마음의 평화가 찾아 오더라

그러면서 고난 자체가 가장 큰 축복이 될 수 있음도 깨달았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평생 가질 수 없었던 보물들이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지

*절망이 얼마만큼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기쁨과 감사는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되는지

*내가 앞으로 마음을 쏟고 시간을 바쳐야 할 영원한 가치는 무엇인지

지난 10년의 시간이 내게 알려 주었다."

1)신앙고백

누군가“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했는데 이지선양은 몸이 아픈 만큼

신앙이 성숙한 것입니다.

그녀의 고난이 감사로 승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무엇인가요?

‘사도신경’도 중요합니다. 참 기독교의 신조를 고백하기에

이방종교와 이단과의 구별을 확실히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신앙고백 속에서 나만의, 나만큼의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토요일 낮에, 영등포역에서 밥사랑의 박희돈 목사님부부와

오찬을 했습니다.

대학교수를 하던 그가 10년 동안 노숙자를 위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줍는 일부터 하여 이제는 700명을,

일주일에 6번씩 밥 주고 있습니다.

그의 고백은, “낮아졌더니 사람이 보이더라.”였습니다.

그러면서 구태여 기도원 가지 않아도, 구태여 성경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이더라," 였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찬양,몸,예물로써 할 수도 있지만

최고의 진정성은 삶입니다.

특별히 ‘섬김과 나눔의’ 삶은, 가장 좋은, 가장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구원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던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전도가 전도지 보다 삶,

설교가 웅변보다 삶이 더욱 설득력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충성, 온유 등이 성령의 열매라면

섬김과 나눔의 삶은 감사, 찬양의 성숙한 열매입니다.

2)감사의 조건

일반적 감사는 ‘비교적 감사’입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에 비해서, 좋을 때 감사하는 경우입니다.

이성적 감사입니다.

그러나 ‘신앙적 감사’는 당연함의 감사입니다.

병 나은 것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많은 날들 속에서

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보다 더 큰 감사는 ‘하나님 감사’입니다.

본문이 그 교훈을 합니다.

6절) 땅을 물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

7절)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

8절)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

9절)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

어떤 혜택 때문에 감사가 아니라

그 존재가 계심을 감사하는 것,

마치 부모의 유산보다 부모가 살아계심을 인하여

감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신앙고백’ 아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절대적 감사’가 있습니다.

구원, 영생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우익하리요”

구원은, 지옥에서의 건짐이며

영생은, 천국의 삶입니다.

이 구원, 영생이 은혜로써 내게 주어졌다는 사실,

감사, 감격 할 수 있습니다.

왜? 벙어리가 되어도 찬양할 수 있고

왜? 지극한 가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까?

왜? 이 세상 떠날 때에도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할 수

있습니까? 구원, 영생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착각하는 것은, 구원, 영생이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정서나 문화로 치부합니다.

그러기에 거부하고 그러기에 배타적입니다.

그러나 그렇치 않습니다.

구원,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받은 사람만이

아는 그 무엇이 있어 감격할 수 있습니다.

이 모양이 진정한 기독교입니다.

3)감사의 위력

감사의 말은 누구나 할 순 있어도

감사의 삶은, 누구나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감사를 하면

'희망'이 옵니다. 절망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오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일'들이 옵니다.“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아닙니까?

흥망이 결정됩니다. 하물며 삶으로 감사할 때

흥할 일, 사는 일이 왜 없겠습니까?

박희돈목사님은 이런 간증도 했습니다.

“몸에 청각장애가 와도 몸의 균형감각이 없어져 지팡이를 짚어도

한번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10년째 되는 해인데

비로소 밥주는 일이 안정이 됩니다."

결론) 여러분은 무엇으로 여러분의 신앙을 고백합니까?

건강은 얼굴빛이, 경제력은 차림이 증거합니다.

우리의 구원, 영생, 그리고 하나님 사랑을, 어떻게 증명해야 됩니까?

삶의 감사, 익숙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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