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위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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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살전4:13~18
일 자:2010년12월5일
제 목:서로 위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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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옛 소대원들을 34년 만에 만났습니다.
쉽게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꼭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특별한 사정 때문에 참석 못한
대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능력의 한계와 성실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1)하나님의 성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기에 식언치 아니 하시고
인자가 아니시기에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무슨 약속이시든지,전능하심과 성실하심으로
꼭 이루십니다.
성경은, 그러한 하나님을‘미쁘시다.’고 말씀합니다.
곧,‘신실하시다.’‘신뢰받으실만하시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신뢰받을실만 함’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인류 최고의 장수자는 무드셀라입니다.
그의 이름은 ‘종말을 고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심판의 예고자로 삼으셨던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삶을 고친 사람은
무드셀라의 아비 에녹이었습니다.
그 믿음의 경건이 어찌나 출중했던지‘하나님과 동행’했으며
죽음을 통하지 않고 천국 입성했습니다.
그의 아들‘노아’는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즉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그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
또 그 아브람에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
하시더니, 과연 그렇게 하셨습니다.
창21:)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이러한 아브라함이. 그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자 같았던 자신의 몸에서 기필코 생산을 이루신 능력과
약속을 이루워, 기한에 미쳐 출산케 하신 신실하심이
죽은 자 가운데에서도 다시 살리셔, 많은 후손을 얻게 하심이
있게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어땠습니까? 임종시에 자기해골을 메고
애굽을 떠날 것을 명령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백성이 4대만에 출애굽 할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듯, 하나님의 결정적인 미쁘심은
구약의 모든 절기와 제사와 뭇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신일입니다.
2)울고 웃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두려워 떨다가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울다가 웃을 수 있습니다.
낙심하고, 고통당하고, 슬픔이 쌓일 때를 위하여
많은 약속과 보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믿지 못함은, 말씀이나 약속에 앞서
하나님을 불신한 이유 때문입니다.
1.농담으로 여깁니다.
불신의 최고 모습입니다.
롯의 사위들이 그랬습니다.
소돔, 고모라의 성읍이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겨 결국 성과 함께 망했습니다.
2.업수히 여깁니다.
가볍게 여기는 모습입니다.
롯의 처는, 뒤돌아 보지 말라는 말씀을
업수히 여겨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3.확고히 여깁니다.
진리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주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고
다 이루 워 질 것을 확고히 믿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자로, 믿음 신은, 사람이 말씀을 기대는 모습입니다.
사람은 누구입니까?
말씀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기대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말씀대로 주님을 보내셨고
말씀대로 죄를 대속하셨고
말씀대로 부활 시키셨으며
또한 재림하게 하실 겁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끝 모습과 끝날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처럼 죽은 자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대로 이루워 질 것을 믿는 생활이 기독교의 경건입니다.
이 믿음은 행위와 행동으로 입증되어야 됩니다.
주님이 마귀를 이기셨기에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의주인은 주님이기에 세상을 사랑한 나머지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합니다.
주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복 있다고 하셨으니
그들이 ‘모든 수고를 마치고 쉬고 있으며’
‘그 행한 일의 상급이 있음’믿어야 합니다.
3)데리고 오시리라
성경은 이러한 성도를 소망있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런가요?
현재는 ‘주와 함께 있으며’주의 재림 시
‘주님이 데리고 오신다’하셨기 때문입니다.
설령, 지금 세상에서 잊혀버린 존재가 되었다한들
결코 사라진 존재들이 아니며
역사나 추억속에서만의 존재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하늘에서 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믿는 이들은
1.슬퍼만 하지 않습니다.
잠시 슬픔은 있으나 오히려 안도와 기쁨과 환희의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2.서로 위로합니다.
특별히. 세상말로의 위로가 아닌, 주의말씀으로 위로하며
위로 받아야 합니다.
결론)우리 신앙의 믿어야 할 내용은 참 많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을, 그리고 천국과 죽은 자에 대해서도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은 우리 신앙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볼 수 없는 영적인 것,미래적인 것을 믿는 모습이
참 믿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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