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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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예용범 목사
일 짜: 2010.7.25
본 문: 고후12:7~10
깊은 산속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에게
큰 호랑이가 다가 왔습니다
"어흥"하는 소리가 웬지 애처로왔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호랑이는 앞 발을 내밀었습니다
나그네가 이상하여 발을 살펴보니
큰 가시가 박혀 있었던 것 입니다
나그네는 큰 가시를 제거해주었습니다
훗날 그 호랑이가 그 나그네집에
토끼를 물어주어 은혜를 갚았다는
전래동화입니다
동화의 메세지는 '은혜갚은 호랑이' 이지만
사실로 본다면,
호랑이가 가시에 매여 고양이 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는 굴레로 부립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어떻게 다스릴까요?
1)바울의 고통
전도자 바울에게는 여러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 고난외에
지긋지긋한 고통이 따랐습니다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라고 하는
고질병입니다
어느 학자는 다메섹에서 큰 빛을
받을 때 충격받은 탓에 '안질'이라고 하고
어느 학자는 예민한 사람이 잘 걸리는
'위장병'이라고도 하지만
정확히는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고질병이 사도 바울을 주께 굴복시키고
겸손케 만든 것은 확실합니다
고후12:7)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복음도, 사도직도, 계시로 받았고
천국도 다녀왔고
또한 지극히 큰 사도를 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할 만큼
지식도 많은 주의 사람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모든것을 다 주시지 않습니다
즉 독수리 날개에 호랑이발톱, 황소의 힘줄을
주시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의 부족은
말에는 졸하고 고질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10가지중 다 주시지 않습니다
어느 한두가지는 부족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애굽의 모든 학문과 학술을 배웠지만
말을 못해서 그 형 아론을 대언자로
세우도록 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건강,열정,수제자라는 존귀가 있지만
그는 '무식한 어부'이기도 했습니다
1.사울의 노력
사울은 이 부족을 해결하고
이 고통에서 벗어 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을 겁니다
특별히,자신은 남들이 자기 그림자에
손수건만 갖다 놓아도 병이 떠나가는
신유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낫질 않자
고후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금번 성회에는 이러한 부족과 문제해결을,
절박한 심정으로 찾는 이들이 왔습니다
그럼에도 다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은혜가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능력 넘치고
은혜가 충만히 임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역설적인 얘기 인가요?
2.바울의 자랑
바울은 아프기만 할 때는 몰랐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낫지 않으므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고후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즉 온전하고 강해져서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하나님을 떠나면
마귀의 공격대상이 될성 싶으니
다소 부족하고, 다소 연약해짐으로
의존적인 존재로써, 하나님 품안에서
사는 것이 낫다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방식은 이렇듯 이상합니다
주님의 치료방식은 이렇듯 오묘합니다
완전함이 아닌 불완전을 사용하시고
강함이 아닌 연약함을 사용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우리를 아시고
우리의 체질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문제
우리의 문제를 아시겠습니까?
내 관점으로 주님을 이해하고
믿고자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문제는
우리의 소유가 적고, 부족이 있고
이러저러한 육체의 가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나처럼 끌어 내리고
하나님을 내식으로 맞추어 믿고자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지만
모든 것을 결코 우리식, 우리 뜻대로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며
예수님은 우리의 주권자가 아닙니다
때론 기도응답이 늦도록 하시고
때론 고통과 곤란중에 방치하시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식과 하나님 뜻대로입니다
3)바른믿음
바른 믿음을 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 것도
이 까닭입니다
종종 우리 신앙은 능력을 원하지만
실제는 성숙이 더 훌륭합니다
각종 은사와 권능이 발휘되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듯이
열심과 충성이 있다해도 성숙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무엇인가요?
1.수용하는 신앙입니다
다윗은 바셋바와 부정한 아기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이를 죽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아이의 생명을, 간절히
금식하며 구하였지만 하나님은
뜻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아이가 죽자 다윗은 곧 수용하고
일상으로 복구했습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간절히 구하였지만
자기의 뜻만 아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난 후
곧 자기의 뜻은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수용했습니다
성숙할수록 타엽하고
성숙할수록 수용적입니다
미숙할수록 자기뜻만 고집하고
미숙할수록 자기고집만 관철시키고자 합니다
사회생활도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침노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는 것이 다 내식대로
응답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뜻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것이 다 좋다고 하지만
실제 나쁜것이 많습니다
반면 하나님께는 나쁜것도
좋은것이 될 수있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름심을 입은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루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2.배려하는 신앙입니다
배려의 본 뜻은 헤아림입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신뢰없이는 배려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따라서 그분의 모든 일들을 이해는 못해도 믿을 수 있습니다.
내게 관계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육체의가시를 주시일을,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하나님을 배려했던 겁니다.
결론)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선하십니다
오직 이분에게만 '도리어'의 섭리가 있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기대하는 바가 있고
믿는 바가 있지만
그 모양에서 어긋난다 할지라도
아니 반대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의심할 수 없기에
자신들의 신앙절개를 지키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때 도리어
수용하고 살기를 포기한 이들을 불속에서 지키시고 건지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주안에서 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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