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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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예용범목사
본 문: 고전1:18~25
일 자: 2010.6.20
얼짱각도라는 말을 아시는지요?
같은 얼굴이라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따라
각기 다른 만큼 제일 예뻐 보이는 각도를 말합니다
어느 여성 연예인은 소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제발 아래에서 치켜찍는 사진만큼은
삼가해 달라“고 했습니다
콧구멍이 보이며 자기 콧구멍은 짝짝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각도에서 보여지길 바랍니까?
1)십자가
어찌 얼굴에만 얼짱각도가 있겠습니까?
모든 사물이 그러하고
특별히 십자가는 더 합니다
죄인을 처형한 끔찍한 형틀인
십자가라도 어느 각도에서 어느 시선으로
보느냐 따라 하나님도 예수님도
죄성도 달리 보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가치와 감사와 감격도 다릅니다
1. 십자가 위에서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예수 십자가는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의 시각’이 됩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죄인이며
따라서 구원의 대상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
이때 십자가는 한 의인의 희생으로 모든 죄인을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구원의 방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시각을 이렇게 진술 했습니다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그렇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죽으심은
누구에겐 무능이요
누구에겐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죄는 죽고 사람은 살리는 구원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사람과 세상엔 이런 지혜, 이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다 죽든지 살든지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십자가 곁에서
십자가 곁에선,십자가가 어떨까요?
*백부장의 시선이 있습니다
마28:32)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더라
왜 그럴까요?
십자가 곁에서 예수님의 운명을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마27:45)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 하더니
50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52절)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서~
백부장은 사형집행관입니다
이 일에 전문가입니다
많은 경험을 통해 볼때,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악인의 죽음에선 결코 이런 일이 없습니다
의인의 죽음이라도 너무 기상천외합니다
결국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이 아무리 옳았다고 해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성경은, 훗날에 “찌른자도 볼 것이요”
했기 때문입니다
*두 강도가 있습니다
동일한 아픔과 고통을 가장 실감나게
느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고백은 각기 달랐습니다
한 강도는 예수를 믿었고
한 강도는 예수를 조롱했습니다
십자가 곁에는, 늘 이런 일이 있습니다
역사로만 볼 수 있습니다
이성이나 감성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멋진 그림, 시, 음악은 창출해 낼 순
있어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만들기에는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서 안티기독교도 생겨낫습니다
* 요한과 마리아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아들, 선생의 죽음을
바라본 이들입니다
인간적 연민은 지녔을지언정
진정한 십자가의 의미, 가치등
그 대속은 놓쳤습니다
실제 그들은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십자가 아래서
구속의 주님을 잘 알 수 있는 시각은
어딘가요?
‘십자가 아래’입니다
1) 공의로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속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예수님께 향하여
철저하고 단호하게 심판하셨습니다
즉 대속이란 상황참작과
아들이란 신분을 참조하지 않으신체
대략적이고 대강적인 심판이 아닌
예수님께 하나님자신을 심판자로써 철저히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서
죄에 대하여 이렇듯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2) 사랑의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데
거저 하실 수 없습니다
죄를 간과할 수 없는 완전함의 속성때문입니다
죄를 용서하기 위한 ‘희생제물’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이 희생제물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화목제물’로도 삼으셨습니다
즉 죄를 용서하시고 화목까지 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속성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서 이 큰 사랑을
보아야합니다
3)예수님의 순종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분리 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서
하나님과 분리 되셨습니다
본성은 원치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시고자
쓴 잔을 마셨으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철저한 분리의 늪에 떨어지기도 하셨습니다
결론) 십자가 아래는 죄인이 쉴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십자가 위의 예수님께
이미 내가 받이야 할 저주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서만,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 화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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