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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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자 : 예용범 목사
일 자 : 2010.5.16
본 문 : 눅 5:17~26
사람에게는 두가지의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필요가 있습니다.
육체의 필요입니다.
영원을 사는 필요가 있습니다.
영혼의 필요입니다.
1)신앙
땅위의 존재하는 많은 종교는
이러한 필요충족을 위한 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기독신앙도 이런면에서 다른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별되는 것이 있습니다.
받고자 하는 복중심에서
하나님이 주신 복중심입니다.
받고자하는 복중심이 기복주의라면
하나님이 주신 복중심은 복음주의 입니다.
주님이 중심되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미래보다 현재가 중요하다하고
하나님은 현재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 하십니다.
또한 사람들은 육체가 중요하다하고
하나님은 영혼이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독신앙은, 하나님 중심가치의
전환을 이룩한 신앙입니다.
천하를 얻고도 자기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사람이 떡으로서는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무엇이 중요하다고 하십니까?
일반적인 가치인, 현재와 육체의
필요충족보다
하나님의 가치인, 미래와 영혼의
필요충족인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과 우리주님의 말씀과 삶이
이를 웅변해주고 있습니다.
히 11:15~16)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
하였더면 돌아 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컫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성을
예비하셨으니라.
2)확증
여기에 늘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 영생 입니다.
보여지거나 만져지지 않은만큼
확증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기복주의에
불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월하거나 탁월한 신앙을, 한갖 흔한
종교로 매김하는 것은 물론 내 영혼을
지옥으로 떨어트리는 과오를 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히4:1~2)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
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치 못할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너희에게
유익되지 못한것은 듣는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 함이라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함이라.
히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점검해 봅시다.
1.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까?
2. 이후의 삶의 변화가 왔습니까?
특별히 죄악에 대해서 기피합니까?
3. 하나님에 관한 소원이 있습니까?
즉 영적, 신령한 소원이 생겼습니까?
4. 성령님의 내주하심이 확실합니까?
5. 하나님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습니까?
6. 죄의 문제가 예수님안에서 해결
되었다고 성경대로 믿으며
죽음이 천국에 입성하는 첫 시작임을
확신합니까?
7. 이 모든일에 은혜가 주어졌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까?
특징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하나님 아버지가 무서운 심판자가 아니라
좋으신 나의 아버지 입니다.
2. 현실적인 필요충족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중심에 더 중요합니다.
3. 예수만이 유익한 구원자이시요
인류의 소망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그 증거에 부담을 갖습니다.
4. 불신자의 영혼에 대한 <불쌍함>이 있습니다.
5. 천국 지옥이 실제적 장소로 분명히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3)중풍병자
본문은 중풍병자가 고침받은 사건입니다.
중풍병자의 현실적 필요는 육체의 고침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주님께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중풍병자의 심각성을
보신것이 아니라
그를 메고 온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미래와 영혼의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즉 주 하나님이 주시고자하신 복을
주신 것입니다.
두 필요가 요청되지만
영혼과 미래의 충족가치가 우선입니다.
이 충족이 되어져야만
육신과 현재의 충족이, 채워지든
그렇지 않든 삶은 안정함을 받습니다.
환자의 요청대로
육체의 필요가 우선 충족되면
여호와의 필요충족은 말살되어
살았으나 죽은자가 됩니다.
눅 5:23) 주님은 이 형편을 아시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것이
쉽겠느냐
하신것입니다.
어느것이 쉽겠습니까?
죄사함은, 하나님 은혜요.
예수님의 대속함의 공로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중풍병자는, 환자의 의지와
주변 사람들의 기술과 수고로 말미암아도
잘 낫지 않은 불치병이기 까닭입니다.
결론) 우리는 신앙에 자꾸만 자신의
공로를 주입시킵니다.
우리는 신앙에 육체의 필요충족만이
전체인냥 매진합니다.
그렇지않습니다.
<죄사함> 으뜸사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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