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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0-04-20 15:43 조회 1,338회 댓글 0건

본문

일 자: 2010 3 28

설교자: 예용범 목사

본 문: 요12:12~19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옛 예루살렘군중들이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을
환영하며 맞이한데서 기인했습니다

1) 예루살렘의 군중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옛날도 그러하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수도가 어떤 곳입니까?
교육,문화,정치,종교,상업등의 집결처입니다
어디나 그렇듯이 수도의 사람들은
나름 긍지를 가지며
비교적 생활이 나으며
정보와 이해력과 교육열이 월등합니다
수도에서 살고하 하는 적응력인 셈입니다

현대는 어떻습니까?
과거보다 생활열이 낫습니다
서울은 이런면에서도 특별시 답습니다
결코 뉴욕 동경 런던의 시민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에
나사로의 부활은 충격의 소식이었을 겁니다
죽은자가 살아났다, 어땠을까요?
예수가 살렸다
죽은자를 살리는 능력등

도시 특유의 정보망과 도시특유의
열심을 통해서 확산되었을 겁니다

이러한 예수는
당시 로마제국주의 압제속에서 있던
예루살렘에 희망을 주지 않았겠습니까?
소위 정치적 메시야로 인정받기가 충분합니다

그 예수가 예루살렘을 입성한다니
대단했을 겁니다

적극적인 사람들은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자신의 옷을 깔고 예수님이 지나가도록 했습니다

소극적 사람들은
최소한도 얼굴은 보면서 "호산나"하며 외쳐야만
시대에 맞는 행동이라고 자평했을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힘 있는 예수인 만큼
예수맞이를 잘하므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나 아니면 사회적 입지가 향상
되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류는 지금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이나
교회생활을 시대의 앞선 유행이나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데 활용합니다

대통령이 다닌 교회에, 많은 교인들이 증가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어느 교회에, 어느 연예인이 다닌다면
그 교회당은 교인이 증가됩니다
팬들이 다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보다 야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가야 그 인물과 마주할 수 있고,그와
공유한다는 환상에 잡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진리는 공허한 내용일뿐입니다
이미 볼려고 하는 것과 들으려고 하는
그 다른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신앙같지만 신앙은 아닙니다
주님이 부르지 않았는데 왔으며
주님을 믿고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5:40~41)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이들이 훗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며 시위했던 그 군중들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을 향한 기대가 증오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2)바리새인들
이처럼 요란하고 극성스런 예루살렘 군중곁에
아주 냉소적인 다른 무리가 있었습니다
요12: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쫓는도다 하도다

예수님을,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여
제거하고자 했던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신봉한다고 했지만
실제는 눈이 가려 예수님을 영접치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지금의 예루살렘의 난리와
저 군중들의 아우성은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자신들의 계교가
실패되었음을 상징합니다만

곧 예루살렘 군중들과 결탁되어
예수님을 로마의 법정에 세우고 맙니다

이들의 마음 속에는
정의도, 긍휼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유대교가,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롭지 않기만 바랬던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책망이 헛된 책망이 아니었습니다
마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 부류가 현대교회에 없을까요?
여전히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진리가 무엇이냐?
복음이 무엇이냐?
어떻게하면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뜻이 만 백성에게 성취될꼬? 하기보단

내 산업이, 내 자리가, 위태하면 어떻게 될까?하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킵니다

최근들어 교권때문에 싸우는 교단이 많아졌습니다
감리교, 순복음, 모장로교단등
여기의 특징은 결국 '내자리가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또한 기독교 문화의 각종 신문과
출판사들이 있습니다
다 선교사업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다수는 선교보다 사업이 우선시되어
진리는 외면한체 사업존재따라 이단과 타협하거나
비진리를 진리인냥 퍼트리고 있습니다

지역은 달라도
시대도 달라도
인물은 달라도
유감되게 옛 예루살렘 군중이나
바리새인들의 행위는 지금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는것 같지만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모는 일이요
예수님을 위하는것 같지만
결국 자신을 위하는 위선된 행위인것입니다

"호산나" 하며 환영했지만
궁극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것 입니다

참 신앙, 기독신앙은
내가 얻고자하는 바를 얻기위한 신앙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바를 받는 신앙입니다

주님은 세상을 개척하고자 오신 분이
아니라 '나를 거듭나게 하러 오신 분'입니다

3)소리없는자들
오늘 본문을 묵상해 보면
소리없이 따르는 다른 무리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제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어린 나귀새끼를 "주가 쓰시겠다"
했을 때 바친 나귀주인도 있었을겁니다

나사로와 그 누이들이 있었을 겁니다

늘 수종들던 마리아와같은 여인들도 있었을겁니다

실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이들만이 끝까지 했음을 압니다

신앙은 바로 이모양, 이모습입니다
말이 앞서지 않은체
극성을 부리지 않아도
행동과 행위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주님을 믿습니까?
주님을 따릅니까?
주님 곁에 있습니까?
사랑합니까?
보일 수 있습니까?
나타날 수 있습니까?

결론) 종려주일을 통해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마침내 부활주일로 이어집니다

카톨릭은 고난의 십자가를 붙잡기에
봉사에 주안점을 둡니다
개신교인 우리는, 부활에 주안점을
두기에 '의'에 삶을 맞춥니다

그러나 두가지가 다 맞추어야 합니다
소리없이 나부끼는 깃발처럼 열렬하게 맞이합시다
믿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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