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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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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4-04 08:14 조회 41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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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형이고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인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야만했었습니다.

노환이나 사고가 아닌 하나님 명령에 의한 순리였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그의 아들이 호르산에 함께 올라 아론으로부터 옷을 벗겨 아들에게 입혀 위임함으로써 아론은

사명과 일생을 끝냅니다.

민20:26)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라

 

1) 아론과 죽음

아론이 어떤 인물인가요?

모세와 함께 자라지는 못했기에 형제간의 추억은 없었을 성 싶습니다.

모세가 그 백성의 인도자로 80세에 부름 받았을 때에,

아론도 83세에 모세를 대변할 대변자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후 늘 모세와 함께했었기에 바로 왕 앞에 서기도 했었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시내산에서는 하나님임재

앞에 서기도 했었습니다.

이 덕에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과 위엄을 목도한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따라 제사장이 된 두 아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업신여겨 즉사하는 슬픔을 겪어야 했었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 123세,,모세보다 3살 많아도 호르산에 오른 기력자였지만 모세보다 몇 달 먼저 죽고 모세는 얼마 후 브보산에서 죽게 됩니다.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순서 없는 절대적 죽음입니다.

누구나 죽고 언제고 죽는데 대체로 실감 못하고 삽니다.

청년들이 “인간은 죽죠” 한 말 보다 노인들이 “인간은 죽죠” 한 말이 더 큰 울림이 되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과 몸이 아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언제고 절대 죽을 자라는 것을 의식하고 살 때 시간에 대한 낭비가 없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주권이 사람의 생사만이 아닌 화복에도 미침을 증명하며,,

하나님 인지가 지혜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분쟁지역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 한 여기자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그녀에게는 노후준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내일은 신의 시간이기에 노후준비에 신경 쓰지 않는다 했습니다.

안정적이고 이성적일수록 노후준비에 많은 에너지가 쏠린다면,,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성도는 오늘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

집중해야 됩니다,

이 집중은 하나님이 내 노후가 되시도록 하는 비결도 됩니다.

 

2) 삶

우리의 삶은 누구나 지문처럼 다 다릅니다.

시간은 같아도 환경과 사고와 행동이 달라서입니다.

그래서 쌍둥이도 다른 죽음을 맞이하곤 합니다.

 

요즘 워라밸시대라고 합니다.

살기위해서 일하는데 일하느냐 살지 못하면 일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나를 위한 내 삶을 원한다면 가난해도 나를 적극적으로 팔지 말아야합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성도가 사직했었습니다.

이유는,, 돈은 가족이 먹고살 만큼 주는데 문제는 그 돈을 쓸 시간을 안 주더랍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도들은 주의 일 보다는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주의 은혜를 구하는 일과 주의 얼굴을 구하는 일은 다릅니다.

마르다는 여러 일로 분주하고 피곤하였으나 마리아는 주님께 집중했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또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큰 이유는 전도 보다 함께 있기를 원하셨음 알아야 합니다.

모세나 아론이나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만나의 거둠이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양식은 적게 거두어도 부족함이 없었고 많이 거두어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뵐 때 행복이 왔었습니다.

대상29:22) 이 날에 무리가 크게 기뻐하여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마셨더라

누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을 뵙는 일이 삶의 우선순위이고 목적이라 답할 수 있어야합니다.

행복이 목적과 목표가 아닙니다.

하나님 뵙는 삶을 살 때 행복은 자연 오는 열매와 같은 현상입니다.

 

이제는 숙연한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하나님 명령을 따라 아론이 죽기위해 산을 오르고 동생모세와 아들 엘르아살이 함께 산을 오릅니다.

민20:27)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과 함께 회중의 목전에서 호르산에 오르니라

그리고 올랐던 그 산에서 아론의 옷을 벗긴 후 아들에게 입히고 곧 아론이 죽습니다.

28절)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

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죽기위해 산을 오른다? 만감이 교차할 듯합니다.

또 사랑하는 이의 죽는 것과 장사지내기 위해서 함께 산을 오른다? 역시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을 드리기 위해 모리아산을 올랐던 아브라함이 슬펐을까요?

하나님은 잔인하게 느껴지고,, 옷을 벗기는 일은,, 차마 못할 노릇일로 여겨졌을까요?

비슷하게는 주님이 제자들과 동족에게 배반당하셨음이 화나고 매우 서운한 일일까요?

그러나 만약 성령이 함께하셨다면 어땠을까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때이기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호로산에서 죽는 아론이나 훗날 느보산에서 죽는 모세나,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이나,, 갈보리산에서 고통의

쓴잔을 마신 후 돌아가신 주님이나 임마누엘의 특별한 감동이 충만한 때였습니다.

인간적이지만 결코 인간적이지 않는 마치 변화산에서의 주님의 변형 같은 신비와 숭고함과 위엄과 영광이 있었으리라 믿

어지고 이들의 감정도 되레 믿음과 평강이 가득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이는 받은 사람만이 아는 하나님이 주시는 주관적비밀 덕분입니다.

 

그러나 산 아래는 달랐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변화산에서도 그랬습니다.

언제나 산 아래는 그런 특성을 갖습니다.

29절)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이 죽은 것을 보고 그를 위하여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더라

 

3) 인간적인,

인간이 동물적인 것은 유감이고 인간적인 것은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아프지도 않고 피곤치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면 비인간적으로 삭막합니다.

우리는 서로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좋은 형제와 이웃으로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너무나 인간적이라면 주의 비밀과 위엄이 없습니다.

성도는 주의 생명을 지닌 사람이고,

교회는 주님의 몸된 공동체이기에 세상이 없는 거룩한 신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성적일 수는 있으나 이성주의는 곤란합니다.

신비를 배격하고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신비주의도 곤란합니다.

말세에는 귀신들도 권능을 행사하고 따르는 자 역시 많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이성과 신비가 공존해야 합니다.

문제는 현대교회가 이성적임에 비해 신비가 부족하거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그래서 돈과 죽음에 너무 눌려있다면,,

그것이 교회의 현주소라면 안타까운 일이기에 빨리 주의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 비해 갑절의 영감을 구했듯이 그리고 받았듯이 갑절의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나의 암 진단과 시술 후 소감을 글로써 간증했었습니다.

글대로 사실과 감정이 그대로였습니다.

현대는 암이 많고 치료도 많이 발달했어도 여전히 암을 두려워합니다.

73세의 어느 목사님은 전립선암이 왔는데 그 진단을 받고는 교회당에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인간적일뿐 성령을 따라 사는 모습으론 아쉽습니다.

호르산에 오른 아론과 모세와 엘르아살이 울며불며 했다면,, 또 모리아 산에 오른 아브라함이 몇날며칠을 고민하다 할 수

없어 이삭을 데리고 갔다면,, 갈보리산으로 향하신 주님이 조금 더 살려고 머뭇거리는 그런 모습이었다면 어떨까요?

지극히 인각적인만큼 영생 있는 위엄은 아닐 것입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내게도 주관적인 감동이 있었기에 낙관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 성도된 우리에게는 이미 영생이 주어졌습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권능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심오한 깨달음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심겨집니다.

아론도 모세도 그의 아들 엘르아살도 이 생명을 지녔기에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호르산에 올랐고 아론의 옷을 벗기고 엘르

아살에게 그 옷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히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

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영생은 결코 인간적이지만은 않는 하나님께 속한 능력이고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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