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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설교] 나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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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12-01 19:53 조회 2,060회 댓글 0건

본문


나는 누구입니까?


2004년 1월 2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말씀 : 마태복음 16장 13 - 18절


제 목 : “나는 누구입니까?”


설 교 자 : 예용범 목사




어릴 때 놀았던 수수께끼 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 내 것은 내 것인데 남이 쓰는 것이 무엇일까요?


○ 답은 「내 이름」입니다.




모든 사물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습니다.


○ 세계에서의 가장 긴 이름은 무려 37개의 단어가 모아진 이름이며,


○ 우리나라의 가장 긴 이름은 「황금 독수리 날개 크게 펴고 하늘 높이 날다」입니다.




1) 이름의 특징




이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 자신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제 3계명에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흔히 「할렐루야」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찬송합시다!」하는 의미인 만큼 가볍게가 아닌 정중하게 해야 합니다.




○ 간단해야 합니다.


아까처럼 너무 길면은,


듣거나 부르거나 기억하기가 힘듭니다.


자동차의 경우,


영어로는 7자이하,


한글로는 5자 이하가 되어야 합격입니다.




○ 이미지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제 외삼촌은 「억만」입니다.


여러 윗분들이 곧 세상을 떠나셨기에 장사하라는 의미로써 「억만」으로 지었답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기업에서도 생명처럼 여깁니다.


금성사는 세계화를 주창하면서 웃는 모습의 LG로 바꾸었고,


현대 자동차의 「소나타」는 실패했으나 「쏘나타」라고 이름을 바꾼 후 세계적 명차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름들이 현대의 복잡한 구조 양상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집니다.




저의 경우,


예용범은 고유명사입니다.


목사는 보통명사입니다.


제일교회 담임목사로 불리워 질 때는 대명사입니다.




문제는 그 많은 이름 중에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이름이 있으며,


남이 익숙하게 불러주는 이름이 있습니다.




○ 여러분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워지길 원합니까?


저의 개인적인 소원은 위임목사, 혹은 담임목사 예용범입니다.


이 부름 속에서 저는 일종의 책임의식을 느낍니다만,


성도들은 대표성을 뛴 당회장 예용범 목사라고 합니다.




2) 예수님 이름




예수님만큼 많은 이름이 있는 분이 계실까요?


○ 나시기 전부터 「예수」라는 고유명사를 갖으셨지만,


유대인의 왕이요,


요셉의 아들이요,


인자 등으로 불리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더러는 「 엘리야」 같고,


더러는 「세례요한」같다고도 했으며,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랍비여」불리웠습니다.




큰 권능을 행하셨기에 엘리야 같고,


모태로부터 나실인 되어 머리를 기르고 독주를 마시지 않았기에 세례요한 같다고 했던 것입니다.




또 제자들을 가르치셨으니 랍비여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듣길 원하시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 주여,


○ 그리스도시요,


○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입니다.




그 사랑하시는 제자 베드로가 이렇게 믿음을 갖고 고백했을 때




마 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신 것이 증명합니다.




○ 「주여!」세상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창조주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여호와를 「Lord」했습니다만,


신약에서도 주님을 「Lord」표기합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만 들을 수 있는 호칭이며 하나님과 예수님은 한분이시다 함을 웅변합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여」가 있습니다.


보통명사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데,


많은 왕, 제사장, 선지자들이 다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도 이 3직을 공유하셨기에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지막 대명사가 나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 큰 권세와 권능을 위임받아 나타내셨습니다.


풍랑을 잠잠케 하셨고,


귀신들을 제압하셨으며,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마침내 자신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이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성도들 입니다.




찬 101)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시기 전에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영원하고 높으사 훗날에는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즉 모든 무릎들이 예수의 이름에 꿇게 될 것입니다.




3) 우리의 이름




그렇다면 우리의 이름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니, 남들은 우리를 향해서 뭐라 부르며, 우리는 어떤 이름 듣기를 기뻐해야 하나요?




세상은,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인이라 칭한 이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고 있으며 우리 자신은 「성도」「예수의 사람」이라고 자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고유명사는 각기 다릅니다.


할아버지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지어주신 보통명사는


○ 성도요


○ 목사요


○ 장로요


○ 집사요


○ 권사요


○ 교사입니다.


그리고 대명사가 있다면 「복음의 종」입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한 만큼 우리의 이름은 「귀한 이름」이며


예수님과 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룩한 칭호」입니다.




문제는,


어떤 성도였느냐?


어떤 목사였느냐?


장로였느냐?


집사였느냐?


어떤 예수사람이고 복음의 종이냐? 입니다.




노아와 고넬료는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란 칭함을 받았습니다.


가롯유다는 「배반자」로


도마는 「의심자」로 낙인 찍혔습니다.




우리는 어떤 성도요?


어떤 직분자입니까?


옛날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부대에 왕과 똑같은 이름을 지닌 알렉산더 사병이 있었습니다.


이 사병은 술 주정뱅이였습니다.


사고뭉치였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더대왕이 이 부대를 방문했습니다.


모든 공식 업무를 마친 후 사고뭉치 알렉산더를 찾았습니다.


벌벌 떨며 엎드려 있는 그 알렉산더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묻습니다.


네가 알렉산더인가?


네!


네 행위가 내 귀에 들렸느니라


이놈! 네 행위가 무엇이냐?


네 이름을 바꾸든지 행위를 고쳐라


내가 창피하다 했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사기 치는 크리스천이 있음을 압니다.


○ 주보다는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성도가 있음을 압니다.


○ 기도하지 않는 제직,


○ 남의 말 옮기는 복음 종,


○ 선교하지 않는 선교회


○ 어린아이를 낙심케하는 교사




부르는 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신앙을 바꾸어야 합니다.




○ 막달라 마리아는 비천한 여인이었지만 삶이 숭고했기에




마 26:13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누가복음의 부자요 나사로를 기억해 보십시오.


부자의 이름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과 복음과 뭇 영혼을 위한 수고가 없었기에 그의 이름은 「얘」가 되었고, 이 땅위에서 무명인 「나사로」는 낙원에서도 기억되고 부름바 되고 있습니다.




좋은 이름으로 불리워지길 원합니까?


○ 좋은 일을 이루십시오.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리워지길 원합니까?


○ 아름다운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마지막 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여러 성도들에게 마지막 문안이 나옵니다.


그 부름이 다양합니다.




○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


○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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