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설교]복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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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으세요
2004년 1월 1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말씀 : 시편 73편 27절 · 28절
제 목 : “복 받으세요”
설 교 자 : 예용범 목사
매년 이때쯤이면
흔하게 하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올해에는 복 받으세요!」
쉽게 주고받는 인사지만,
「복」받으라니 대단한 인사요
「주지도」 못할 복 받으라고만 하니 싱겁기 짝이 없는 인사말입니다.
1) 복과 복의 비결
성도들은
복과 복 받는 비결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옛날 어느 신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시험만 잘 보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하는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교수가 아무리 공부하라고 타일러도 그는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한 눅 11:40을 외우고 붙이고 기도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시험 시간이 되었습니다.
문제의 답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그는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하고 써놓고 교실을 나갔습니다.
채점하는 담당교수는 그 답안지를 보고 이렇게 점수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니 100점
학생은 다 모르니 0점」
무슨 애기입니까?
믿음은 행동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만,
세상에는 믿음으로 산다는 명분아래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하지 않는 한심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본인은 자신의 믿음이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역시 하나님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착각」임을…….
① 믿으십시오.
복 받길 원합니까?
먼저 믿어야할 내용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요
복 주시는 이도 하나님뿐이십니다.
잠 10: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한 가지 더 믿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이 복은 꼭 예수님 안에서만,
즉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십니다.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돈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문제는 이 복이 예수님 안에서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왜 그럴까요?
만약 그냥 주고 받는 다면 상은 될지언정 보물이 아닙니다.
보물은 희소가치가 생명인 만큼 찾아야 겠기에 감춘 것입니다.
어릴 때 보물찾기를 연상해 보십시오.
정해진 구역 안에 보물들을 감추어 놓았습니다.
이때 열심을 갖고 찾는 이들에게 보물은 드러납니다.
만약 「믿습니다.」하며 찾기에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그는 보물찾기를 원하는 마음은 있었을지언정 보물은 얻을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의 신령한 복이든,
땅의 기름진 복이든,
형통의 복이든,
풍성한 복이든,
무슨 복이든 주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성도는 이미 주 안에 있기에 보물 구역 안에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찾기 위한 실천이 필요합니다.
② 찾으십시오.
오늘 성경은 「가까이 함」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믿음 이후의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몇 가지로 가까이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 범사에 주를 인정하십시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다윗은 목동 시절이나 광야 시절이나, 궁궐시절에나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그의 전생애적인 고백이 있습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 왔을 때도 그 난리 중에도 여쭈었습니다.
또 쳐들어 왔을 때도 또 여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다윗의 하나님이 되셔서 지도하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다윗이 하나를 물으면 두개나 세 개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의 승리, 그의 성공, 그의 평안은 자기 모략의 산물이 아닙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한 하나님의 복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을 가둔 왕 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갈 수 있으리라」
이사하는데 복된 곳으로 가길 원합니까?
사업에 있어서 인도받길 원합니까?
배후자 결정에 은혜받길 원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 주님을 향한 갈급함 모습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것이 그립습니다.
일종의 필요를 느끼는 것이 「가난하다」「갈급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현대인들은 정보에 갈급합니다.
밤새워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습니다.
◎ 자본주의는 자본에 갈급합니다.
◎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주님과 신령한 일에 마음이 가난 합니다.
마 5: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여러분은 왜 교회에 오셨습니까?
주님과 신령한 일에 갈급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람은 자다 일어나서도 물을 들이킵니다.
배고픈 사람은 찬밥 더운밥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장이 반찬이라고 합니다.
주님과 신령한 일에 목마른 사람일수록 시간과 거리를 따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
결국은 천국을 얻기 때문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도모합니다.
직장인 예배에 나오는 여은행원의 얘기입니다.
년초의 수요일 저녁에 예배당에 오셨습니다.
낮에 오셨는데 저녁에 또 오신 것입니다.
사연인즉,
직장에서 고사를 지내기에 피난 왔다는 것입니다.
직장상사들은 고사 드리는 때에 함께 있길 주문했지만,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기 위해 직장상사의 명을 거역했다는 것입니다.
흔히 주님이 나의 기쁨이라고 하지만,
주를 가까이 하는 일은 주님의 기쁨이 되고자 내 불이익을 감수하는 모습입니다.
찬 364장)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집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나중에 만나서 들어본즉,
불이익은 없었다고, 자신이 승리했다고 감사했습니다.
고전 16:13-1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이렇듯 주님 기뻐하시는 일은 많습니다.
굳게 서서 믿음을 따라 신앙절개를 지키는 일도 있고,
때로는 사랑으로 행하여야 하는 온정 베푸는 일도 있습니다.
㉣ 말씀의 순종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의 말씀을 기억합니까?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서 선포한 말씀입니다.
결국 사울왕은 불순종으로 왕위를 잃어야 했습니다.
비극적 종말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복 없는 모습입니다.
◎ 공부 잘하는 학생이
부모에게 불순종할 수 있듯이
◎ 친구들에게 인기 좋은 학생이
부모 뜻을 거역할 수 있듯이
앞서 열거한 모든 것들을 잘 준행하면서도 주님 말씀과 주의 뜻에 불순종하여 거역할 수 있습니다.
즉 제사 하면서도 불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입장에서는 무엇을 바랄까요?
공부보담은 순종,
친구들로부터의 인기 보담은 역시 순복입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명기를 보면,
하라, 하지 말라로 구분됩니다.
아주 엄격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보면
그 엄격한 말씀 속에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라와 하지 말라는
우리를 향하신 지도요 배려요 명령인 까닭입니다.
예컨대
◎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는 -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야 됩니다.
◎ 삶에 있어서는 -> 거룩함인데 정직과 공의입니다.
◎ 하나님께 있어서는 -> 바른 경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절대적 순종이 요청됩니다.
하나님에 관한한 타협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주일을 온전히 지켜야 됩니다.
날 도둑이 되지 마십시오.
주일은 주와 함께 안식하는 날이지 노는 날이 아닙니다.
◎ 십일조는 백성된 의무입니다.
다른 헌금은 내 형편, 내 믿음 따라 드립니다만
십일조는 형편과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순종의 문제입니다.
농사짓는 농부는
춘궁기가 와도 종자는 먹질 않습니다.
십의 일,
내 산업과 내 산업의 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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