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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설교] 요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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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12-01 20:06 조회 1,719회 댓글 0건

본문

2004년 6월 6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말씀 : 요나 1장 1-4절
제 목 : “요나에게”
설 교 자 : 예용범 목사

남편의 구원문제를 놓고 항시 기도하던 어느 여집사님의 「황당사건」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부인이 교회 가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하루는,
교회 부흥회가 열렸는데 이 남편은 부인이 집에 없자 술 먹은 김에 교회로 좇아갔습니다.

마침 통성기도 시간이었기에 다소 어두워진 틈을 타서 부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밖으로 끌고나와 패대기를 치며 마구 때렸습니다.

부인은 「사람 살리라」고 했는데 그만 그 소리가 술 취한 남편이 듣기에도 이상했습니다.
자기 부인이 아닌 남의 부인의 목소리였던 것입니다.
졸지에 끌려 나와서 매 맞은 부인은 어느 경찰서장의 부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싹싹 빌었습니다.
이때 경찰 서장부인이 조건을 달았습니다.
앞으로 교회 잘 나오면 용서해 줄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남편에게 일러서 징역살게 할 것이다.

결국 그 남편은 교회에 나오고 신앙을 가져 집사가 되었습니다.

웃자고 꾸민 얘기가 아니라 실제 사건입니다.

남편 구원을 위한 여집사님의 기도가 전혀 생각지 않게 응답된 것입니다.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씨앗을 뿌리면 꼭 거두게 되는데 복음의 씨앗도 뿌리기만 하면 기필코 거둔다는 얘기입니다.

혹 집안 식구이든
집 밖 식구이든 전도하다 지쳐 있습니까?
위 사건을 통해서 위로와 희망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시 126:6 “울며 씨를 뿌리려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1) 요나서

오늘 성경은 선교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 즉 전도자가 나옵니다.
◎ 부려야 하는 씨앗인 하나님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 선교사의 불순종에 관한 결과가 나옵니다.
◎ 회개의 참 모습이 나옵니다.
◎ 은혜의 메시지가 두 번째 나옵니다.

행여, 우리 중에 요나서가 고전이라고 치부하는 이가 있나요?
혹시, 요나가 남의 얘기라고 외면하는 이 있나요?
그러나 요나서는 우리에게 향하신 선교의 뜻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대변서」요,
성도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가르치고 임명하는 「계시서」요 「임명장」인 것입니다.

즉 요나서에는
① 만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욘 1: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으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특별히 세상과 인생을 향한 뜻이 무엇입니까?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② 그리고 선교사를 임명하시고 보내시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욘 1:1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쳐라”

이러한 선교사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천군과천사가 아닌 연약함의 대표격인 사람의 자식들을 부르시어
임명하시고 보내십니다. 이 일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 베드로의 경우, 유대인으로 보내졌습니다.
◎ 바울의 경우, 이방인과 로마의 귀족에게 보내졌습니다.
◎ 요나의 경우, 이스라엘의 원수국인 니느웨로 보내졌던 것입니다.

복음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할 선교사도 중요하기에 하나님은 말씀의 종을 찾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은 하나님이 선교사를 부르시는 음성이었습니다.

사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음성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입니다.
이 음성에 부담을 느낀다는 것은 소위 소명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목사, 선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모든 성도에게는 이 음성을 듣는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 영국의 리빙스톤은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 미국의 언더우드는 동방의 코레아로 왔습니다.
◎ 나와 여러분은 어디로 가야 됩니까?

오늘날 나와 내 집이 구원을 얻은 데는 앞서 이 음성과 소명의식이 있었던 어느 한 선교사의 순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하는 이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도다“

2) 오늘날

그러므로 오늘날 요나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 불신의 가족들에게
◎ 내 사업장의 동료에게
◎ 그리고 통일 이후의 북한 동포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모슬렘지역까지 우리의 선교지이어야 합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 전하기를 싫어하는 요나가 되었습니다(욘4:2).
복음 전하는 것이 주의 명령이요 옳은 일인 줄 알지만, 인간적인 이해관계로 싫은 모양입니다.

불순종의 시작인 모습인데
이때 당사자의 마음은 평안을 잃고 불안한 때 입니다.

◎ 잠자는 요나가 되었습니다(욘1:5).
복음 전하는 일이 싫은 정도가 아니라 애써 부정하는 모습입니다.

이쯤 되면 잠자는 요나를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대풍이 몰려올 때 입니다.
가정에 직장에 건강에…….
위기와 문제가 찾아듭니다.
이때는 깨어야 됩니다.
계속된 잠을 청하다가는 남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 참회하는 요나가 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는 요나 인 것입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존재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신학교에 가면 이런 사명자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이 먹어 오는 경우,
실패 후 오는 경우,
다 참회한 요나입니다.

◎ 외치는 요나가 있습니다.
온전히 주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외치는 요나인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다 이런 요나입니다.

3) 시대적 고통

오늘날 왜 고통을 느낍니까?
아니 왜 말세에는 고통 하는 때가 이른다고 하셨습니까?

근본이유는 복음의 부재 때문입니다.
어디든 언제든 죄가 관영하면 사망이 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기에
내가 복음에 싫어하고 잠자고 폭풍우를 만날 때에도 나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때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이 후회 없으시다는 것이 내게는 지긋지긋한 부담일지라도
변하여 뉘우쳐서 새 소명으로 충만할 때는 그 은사와 부르심이 큰 은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 은혜에 빚진 자 되어 아골 골짜기도 들어가고 죽기에 이르러 복음에 매인 종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 마치 크게 눌린 공이 높이 튀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 복음의 부재는 「너는 일어나 가서 외치라」하셨던 전도자인 성도의 불순종이요
그 공동체인 교회의 불순종 까닭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글입니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하게 살 수 있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그러면서 최고의 문화건설의 사명은 「모두 성인을 만드는데 있다」
비록 민족주의자의 말씀이지만,
결코 복음의 문화! 복음화와 무관치 않은 것입니다.

교회가 바르면 세상은 평화 되어 평안 되고 성도가 빛을 잃으면,
세상은 빛없는 폭풍우 속에서 깨지는 배와 같은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의 일입니다.
심방 중에 잘 지은 어느 예배당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예배당 현관 앞에 인물이 담긴 현수막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그 교회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모습을 찍어서 내건 현수막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본즉, 마술사 초청 공연 현수막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참 모습이 아닙니다.
이 모습은
이단도 넘어 삼단, 사단이 하는 짓입니다.

4) 두 번째 은혜

하나님은 요나에게 두 번째로 사명을 주십니다.
요나로써는 두 번째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첫 번째와 다르지 않습니다.
똑 같습니다.

욘 3:1-2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우리 이 은혜 받았습니다.
이 음성 들어야 합니다.

먼 땅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오지가 아니더라도 무방합니다.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외쳐야 합니다.
오라! 가 아닌 「가서」
적극적으로 외쳐야 됩니다.
크게 외쳐야 됩니다.

이 일만이
내가,
저가,
모두가 살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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