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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설교] 갈릴리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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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12-01 20:00 조회 1,78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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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말씀 : 마가복음 16장 1-8절
제 목 : “갈릴리에서 만나자”
설 교 자 : 예용범 목사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피격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급하게 병원에 실려 갔는데,
실려 가면서도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의료팀」들에게 유머를 던졌습니다.
「당신들 민주당원이지?」
레이건 대통령은 공화당이었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때에 대통령의 이 유머 한마디가 모두의 긴장을 해소 시켰답니다.

이러한 유머의 힘!
갑작스레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풍부한 지식에서 축적된 관조의 결과입니다.

1) 예수님의 말씀

유감 되게 예수님께는 유머가 없으셨습니다.
너무나 엄숙한 나머지 사실과 진실만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다만 「비유」는 사용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진리요 진실」이신 까닭이요 믿음의 주가 되신 까닭입니다.
믿음은 언행의 일치 아닙니까?

마 24:34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달리 얘기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그 많은 예수님의 말씀은 그래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돌아가시기 전에「부활」에 관한 말씀과 「만나자」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마 26:32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 이 말씀은 죽음 앞에 놓인 허무한 탄식이 아닙니다.
◦ 죽음을 미화시키는 유머도 아닙니다.
◦ 부활 보장이고,
◦ 만남의 약속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 보장을 이루시고 이 약속을 따라 갈릴리로 먼저 떠나 신 것입니다.

막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는지라”

2) 예수님 부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① 부활은 예수님의 사실적 사건입니다.
부활은 언제나 신비한 사건입니다.
◦ 좋은 논쟁의 주제요.
◦ 과학의 비판대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일어난 사건입니다.

부활에 관하여 앞서 예고하시고 만남을 약속하셨던 당사자인 예수님의 생애 중 일어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급조」된 것이 아닙니다.
「날조」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었고,
◦ 나사로를 통하여 증명되며,
◦ 마침내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된 일입니다.

고전 15:3-4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② 그러므로 부활의 당위성이 있습니다.
◦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면 그 후에는 살아나야만 됩니다.
죄 값을 지불하신 만큼 더 이상 죽음에 매여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 종종 악한 자들이 인질을 잡고 돈을 요구합니다.
몸값을 지불한 후 인질을 풀어줍니다.

또 다른 이유는
◦ 예수님의 이름이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세상에는 이름 값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목교회」라지만 다툼이 있어 불화목 될 수 있습니다.
「교수마을」이라지만 교수들이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름대로 사시는 분이십니다.
부활은 죽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살아나는 생명력을 가리킵니다.
언제고 어느 때든 일어납니다.
아니 일어나야만 됩니다.

생명은 죽지 않는 아니 죽을 수 없는 「생명」그 자체입니다.

감사한 것은
돌아가심도 우리를 위한 일인 만큼
부활하심도 대속한 우리를 위해서는 필연적입니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3) 만나자

예수님도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① 갈릴리
갈릴리는 유다땅 북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남북의 길이 약 96km
동서의 길이 약 48km 지역입니다.
갈릴리 바다라는 큰 호수가 있고, 요단 계곡이 있는 만큼,
숲이 있어 조용한 촌락인 것입니다.

왜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가시지 않았을까요?
왜 환영받았던 예루살렘으로 가시지 않았을까요?
왜 빌라도나 대제사장을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왜 피땀 흘린 겟세마네 동산을 찾지 않았을까요?
왜 유월절 만찬을 드신 다락방을 찾지 않았을까요?
왜 변형되며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변화산을 찾지 않았을까요?
왜 자라난 나사렛을 찾지 않았을까요?

오늘날 정치인들을 보면 여차하면 국립묘지를 찾고 결단이 필요하면 조상의 묘를 찾고 이러저러 할 때마다 이런 저런 성역을 찾는데 비해
아무런 정치적 모양도 입지도 없는 갈릴리로 가실까요?

② 제자들을 찾아서
제자들은 예수님 돌아가신 후 다 고향으로 떠났습니다.
3년을 따라 다녔던 그들이지만,
3일도 기다리지 못하고 실의와 낙심을 갖고 고향으로 갔습니다.
(갈릴리는 가롯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고향입니다.)
예수님의 성공이
자신들의 성공인 냥 굳게 믿었던 제자들이기에
예수님의 죽음은
자신들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꿈은 사라지고 3년의 세월은 거품이 되고…….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이 갈릴리를 찾으신 것은 제자들을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 그들은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 그들은 절망을 느끼고 있습니다.
◦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 그들은 자책을 갖고 있습니다.
◦ 그들은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현장에 부활의 주님이 오신 것은,
절망의 공간에 찾아오신 것이요.
좌절의 삶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현대의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화려한 곳, 아름다운 곳, 풍성한 곳, 꿈이 있는 곳이 아니라
눈물 있고, 고통 있고, 설음 있고, 핍박 있고, 절박한 곳에 가십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시며
「내가 살아났단다.」
「나를 보렴.」못 박힌 자국을 보이십니다.

세상은 점점 무섭고 힘들고 괴로운 세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갈릴리일지라도
제자들의 마음의 상태는 광야의 고독감과 마라의 쓴 물을 마시고 있듯이
현대의 우리! 그렇지 않습니까?
물질문명의 번적거림과
자본주의 바벨탑이 높아질수록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무력하게 느끼며 삽니다.

그러나 여기에 주님이 오십니다.
이때에 주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으로 인한 반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
바로 여러분 입니다.
그러므로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주님의 말씀은 여담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고백입니다.
회복언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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