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설교] 감사 감사 감사!
페이지 정보
본문
2004년 10월 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말씀 : 역대하 30장 20-22절
제 목 : “감사 감사 감사!”
설 교 자 : 예용범 목사
우리들의 신앙에 있어 감사와 찬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절대적 모습이고 불가불의 관계입니다.
경배의 주 요소가 무엇입니까?
감사와 찬양입니다.
또 감사 있는 곳에 찬양이,찬양있는 곳에 감사가 항상 따르기 때문입니다.
1) 우리들의 감사
왜 우리들은 감사 감사 범사에 감사해야 할까요?
감사합니다. 하는 말은,
◦ 작은 입술의 고백이며
◦ 부정한 혀의 진술이지만,
놀랍게도 우리 입술과 혀에는 권세가 있어서 권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잠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보십시오.
시 10:7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아 4:11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어떤 고백을 하느냐?
어떻게 진술하느냐로 행복과 불행의 기로가 달라집니다.
특별히 성도는 이 말씀을 지닌 백성입니다.
① 고난과 고통 중에 감사
요나를 기억하십시오.
물고기 뱃속을 상상해 보십시오.
생애 처음 겪는 큰 고난이며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감사 기도가 있었습니다.
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참으로 요나의 감사는 복이 되어 마침내 감사할 만한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욘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② 당연한 감사
본문의 히스기야 왕은 유월절을 성대히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규례에 어긋난 백성들이 부정한 몸과 모습으로 이 제사에 참여 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은 기도하기를
대하 30:19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게 못하였을찌라도 사하옵소서 하였더니”
대하 30:20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
백성과 히스기야 왕은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이 은혜를 보답할 냥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고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③ 잊어버린 감사
그러나 이러한 감사 외에도 잊어버린 감사도 나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10 문둥병자의 고침 받은 사건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10문둥병자가 다 고침을 받았지만,
오직 사마리아 문둥병자만이 주님께 엎디어 사례하고 나머지 9명은 감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주님의 책망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눅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2) 감사는 신앙 예절
이러 보건대 여러 부류의 신앙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감사할 수 없는 극한 지경 속에서 감사하는 신앙이 있고
◦ 감사할 수밖에 없는 좋고 마땅한 지경 속에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신앙이 있고, 등등…….
우리는 어떤 신앙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신앙의 주인공이길 원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 감사는 신앙의 덕목임에는 틀림없으나 한편으로 좋은 습관이요
또 한편으론 신앙의 기본예절로 여겨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 가서는 「인사하기」부터 배웁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신앙고백도 이 기본 위에 세워져야 좋게 됩니다.
미국의 한 교포가 아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내릴 때마다 우리말로 「임마 내려!」 했더니 아들이 그 말을 배웠습니다.
훗날 커서 아빠 친구를 모실일이 있었는데 「임마 내려!」하는 말만큼은 우리말로 했답니다.
한 통계를 인용하면
기업 인사 담당자 623명을 대상으로 「면접 볼 때 가장 안 좋은 인상을 준 최악의 지원자」를 묻는 의견에 가장 많은 37.1%(231명)의 대답은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안하무인형 지원자」를 1위로 꼽았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일반적인 생활에서조차 좋은 습관과 좋은 예절은 그 사람의 덕을 세우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있는 덕도 깎아 내린다면 하나님께는 해당 안 될까요?
신앙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닮는 인격이요 따르는 습관입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그 신앙 인격과 신앙 습관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느냐?
왜 성령으로 감동된 성경 말씀은 「감사하라」고 명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신앙은 자라고
감사하므로 감사의 일들이 생기며
감사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3) 감사 모양
우리들의 감사모양은 어떤가요?
요나나 히스기야 왕 정도는 될지언정 은혜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9명의 문둥병자 같은 무례하고 무식한 신앙인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추석 때 한 간증을 들었습니다.
다리가 아프게 된 권사님이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기도하는데 감동 오기를,
입술의 감사만 드리지 말고 예물도 드려야 된다 했던 것입니다.
곧 예물을 드렸더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더 큰 감사와 찬양이 나오고 기쁨이 지속되는 등……. 했었답니다.
그 과정이 지난 후에는 결국 치료되어 몇 달 동안 통증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① 입술의 감사
사람은 언어의 동물입니다.
이 언어를 같고 감사, 찬양, 전도, 간증은 성도의 합당한 모습입니다.
파스칼은 처음 주님을 만나 그 사랑을 체험하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주님 감사합니다!」하는 말을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인도의 신디 싱은 주님을 만나 주님의 은혜를 입고 「주님! 주님은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나는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하며 외쳤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몸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라 했습니다.
사람의 변화는 입술의 변화부터 옵니다.
감사, 찬양은 가장 기초적인 변화의 기본입니다.
히스기야 왕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
② 예물로 감사
예물 드림에 인색하지 않았던 인물이 다윗입니다.
대상 30: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찌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예물 드림」에는 없으면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있다고 다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물은 형편보다 마음의 척도로 볼 수 있습니다.
과부의 두렙 돈을 귀하게 여기신 만큼
마 22:3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을 때 마음 있는 곳에 예물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③ 전 생애를 드리는 감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감사입니다.
산 제물 되고 산제사 되어 전 생애를 드리는 감사.
누구든 바라지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과거 알지 못하던 때에 복음에 관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를 충성되이 여겨 사도로 세워주셨습니다.
이 감사에 사도바울은 전 생애를 드립니다.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은 맡기심이니”
2000년 7월 어느 날
이화여자 대학교 영문학과 4학년이던 이지선 양은 교통사고로 전신 55% 3도 화상을 입고 7개월 동안 11차례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의 인생은 달라졌습니다.
옛날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고백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져서 지금은 행복전도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감사 고백이 있습니다.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글을 쓰면서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결 론)
추수감사절이 있는 풍요로운 10월입니다.
인간의 모습 가운데
아니 신앙의 성숙한 자세는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감사는 생각하는 삶에서 나옵니다.
감사는 좋은 습관적 삶에서 나옵니다.
생각 없어서 감사하지 않는 죄와
감사 못하는 결례를 범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 이전글[2004년설교] 두 제사 05.12.01
- 다음글[2004년설교] 기도함으로써 05.12.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