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설교] 열리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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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말씀 : 사도행전 12장 1-10절
제 목 : “열리는 문”
설 교 자 : 예 용 범 목사
여행 중에 대전 시 대덕 연구 단지를 지났습니다.
크게 써논 현수막의 표어가 눈에 들어왔는데
내용인즉, 「미래로 가는 5개의 문」해서
◦ 휴먼테크 롤러지
◦ 퓨쳐 필드
◦ 커뮤니케이션
◦ 사이언스 환타지
◦ 베이직 사이언스 등 이었습니다.
국가든, 기관이든, 아님 개인이든 간에 미래를 행해서 나아가는 데는 꼭 통과할 관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발전되고 부흥되는 데는 어떤 문이 열려야 될까요?
1) 전도문
사도바울은,
골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했습니다.
◦ 전도에는 열정만 갖고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동의를 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 전도에는 전략만 갖고는 힘듭니다.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 전도에는 「주의 은혜」가 따라야 되는데 그 은혜를 가장 잘 아는 이가 전도자들이요 또 사도바울입니다.
이 은혜가 있을 때에만 「기회」가 주어지고 성과도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요즘은 전도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 교회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이루고
◦ 새 사람을 전도하기 보담은 이쪽 교인이 저쪽 교인이 되는 등 수평이동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대적으로 본다면 구원의 문은 닫히고 촛대가 옮겨 간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은혜가 임하는 교회는 이 난국 중에서도 전도의문은 열리게 되었습니다.
금번 교회당 옆 현대 홈 씨티의 입주가 시작된 것은 전도의 문이 열리는 징조로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는 주실 때 누려야 됩니다.
빗물을 받고자 해도 소낙비 올 때 항아리 뚜껑 열어야지 맨 하늘이나 그친 후에 뚜껑 여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2) 기도문
본래 문이라는 것은 열렸으면 닫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한 문을 열 수 있는 문은 기도입니다.
◦ 엘리야는 기도문이 열렸던 사람입니다.
열심히 기도하여 하늘 문을 닫고 하늘 문을 열었습니다.
◦ 에스더 왕후와 삼촌 되는 모르드개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심정으로 기도하여 본인들은 물론 유다인 전체를 죽음에서 살려냈습니다.
◦ 본문의 교회는 어땠습니까?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이에 쇠문이 저절로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항상 기도의 문을 열어놓고 사신 분입니다.
막 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의 권위는 예수님 말씀이기도 하지만 말씀만큼 예수님의 기도의 실천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어야 할 기도의문은 어떤 것입니까?
◦ 작은 기도의 문이 아니라 큰 기도의 문이요
◦ 땅에 가까운 기도의 문이 아니라
하늘에 가까운 기도의 문이어야 됩니다.
즉 일반적인 기도의 이해를 벗어나야 됩니다.
기도라고 하면
◦ 경건한 행위
◦ 하나님께 말하는 것,
◦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 아침과 저녁의 신앙적 습관
◦ 식사기도
◦ 각종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는 수단 등...
정도이지만 보다 성숙한 기도는
◦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① 평화를 미워하는 자들의 거처를 떠나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② 내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발돋움 하는 것이요
③ 내게 중심되었던 것이 주님 중심이 되어 대화방식, 호흡방식, 공존방식, 학습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애벌레에게는 길게 늘어선 모든 것이 문제거리입니다.
앞에 있는 돌멩이도 문제이고,
냇가도 문제이고,
막대기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애벌레가 변화된 나비에게는 이 모든 것이 구경거리입니다.
기도의 문이 닫혔을 때는 모든 것이 고역이고 고통입니다. 기회도 은혜도 부담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문이 열렸을 때는 모든 것이 은혜이고 헌신입니다.
간증입니다.
애벌레가 그냥 나비가 되질 않습니다.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여기에 진통이 따릅니다.
이 과정과 이 시간을 견디어 내지 못하면 영영 애벌레로 머물고 맙니다.
교회의 발전도 그렇습니다.
◦ 기도 없는 발전 없습니다.
◦ 기도이 문은 닫혔는데 전도의 문, 부흥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요1서 5:14-15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안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그렇습니다.
기도의 문을 여는 유일한 길은
◦ 기도하는 것이며,
◦ 기도를 잘하는 것은
◦ 기도 많이 하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모름지기 은혜를 알고 주님을 갈망하는 기도의 생활자라면
족히 하루 2시간 이상은 기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쯤 되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듯 하나 오랜 세월을 놓고 보면 계속해서 무언가 일어났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닫혀야 할 문들은 닫혀지고 열려야 할 문들은 계속 열어졌기 때문입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과 진통 곧 기도의 문을 활짝 여는 일임을 명심하십시오.
3) 마음의 문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1970년 4월 1일입니다.
경북포항의 활량한 모래 벌판 위에 3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최초의 「포항종합제철소」착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박태준 포항제철사장, 김학렬 부총리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 철강산업을 위해 종합제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세계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세계가 보란 듯이 당당하게 해 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 죽을 때까지 하자,
◦ 죽는 것은 영일만에 빠져죽자
오늘 본문을 보면
천사가 올줄 기대하고
쇠문이 열릴 줄 기대하고 기도한 성도가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다만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마저 잡히는 불행한 사태에서 저희들은 「한마음」으로 기도했던 것이 귀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 되고
뜻이 합해지는 것!
얼마나 중요합니까?
빌 2:2-3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광야에 머문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을 강퍅케 가졌습니다.
◦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분당심을 가졌습니다.
◦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아들의 영을 마음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이 모든 모습들은 저희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이 모양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모두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뜻은 전도에 힘써야 됩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성전 짓을 때처럼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다.
일상의 생활 속에 하나님과 나라와 성전건축에 힘씀 것처럼 새 신화를 기록해야 합니다.
에이브러함 마즐로우는 「망치를 가진 어린 아이에게 이 세상은 온통 못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 어린아이에게는 온톤 두드리는 것이 능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 한 두 가지 외에 무엇이 생산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가진 성도입니다.
땅에 떨어져 죽어 썩는 밀알의 모습에서 주님은 큰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셨습니다.
남 두들겨서 달라지질 않습니다.
소리만 날 뿐입니다.
자신이 먼저 희생해야 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교회는 보이는 문과 보이지 않는 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문은 열기에 쉽습니다.
보이지 않는 문은 각고의 노력이 따릅니다.
◦ 전도의 문은 은혜의 문으로 엽니다.
◦ 기도의 문은 기도로 엽니다.
◦ 마음의 문은 나부터 열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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